[여기는 진주] 남해안 바지락어선 전복 3명 사망…“그물 무게 못 이겨” / KBS 2022.03.14.
[앵커] 오늘(14일) 경남 남해군 앞바다에서 소형 바지락잡이 배가 뒤집혀 여성 선원 3명이 숨졌습니다. 해경은 바지락 그물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다가 그물에 함께 포함된 갯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배가 삽시간에 넘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기원 기자입니다. [리포트] 바다 위에 배가 뒤집혀 있습니다. 선체 3분의 2가량이 수면 아래에 잠겼고, 배 밑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해경 잠수사들이 실종자를 구하려 바다로 뛰어듭니다. ["1명 더 1명 더. 인양할 수 있습니까?"] 6명이 탄 소형 바지락잡이 배가 뒤집힌 것은 오늘(14일) 오전 10시 반쯤입니다. 3명은 사고 직후 인근에 있던 어선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됐지만 나머지 3명은 사고 발생 45분 만에 긴급 출동한 해경에 의식을 잃은 채로 선체 안에서 발견됐고 결국 숨졌습니다. 이들은 50~70대 여성들로, 바지락 선별작업을 하다가 배가 뒤집히면서 선체에 갇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지락 선별 작업자/음성변조 : "(바다에 빠지면) 못 빠져나옵니다. 장화 신고 가슴 장화를 입기 때문에 무게가 있으니까 못 나와요."] 사고 당시, 배는 육지와 불과 600m 거리의 바지락 채취장에 떠 있었고, 수심은 3~4m가량으로 비교적 얕았습니다. 해경은 갈퀴가 달린 바지락 그물을 끌어올리는 작업 중 그물에 함께 포함된 갯벌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배가 삽시간에 넘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성무/통영해양경찰서 홍보계장 : "바지락을 펄과 함께 작업을 하다 보니까 양망 중에 무게가 너무 많이 실려서 배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급하게 전복이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해경은 사고 선박을 인양하는 대로, 무허가 어구 사용이나 선박 증축이 있었는지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KBS 뉴스 박기원입니다. 촬영기자:변성준/영상편집:안진영/그래픽:박수홍 진주 만세의거 기록전…“역사 잊지 마세요” [앵커]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열린 1919년, 진주에서는 경남 최대 규모의 3·18 만세 운동이 있었습니다. 학생은 물론, 기생과 걸인까지 참가할 정도였는데요. 자랑스런 진주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도에 황재락 기자입니다. [리포트] 1919년 3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 기사입니다. 만세 운동에 나선 시위대로 '진주 형세가 더 불온하다'라고 났습니다. 이튿날 8천 명 이상 군중 시위로 학생 50명이 체포됐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을 맞아 시작된 진주의 독립 만세운동은 5월까지 20여 차례 걸쳐 이어졌습니다. 당시 시위에는 이후 형평운동을 이끌었던 '백촌 강상호 선생' 등 선각자는 물론, 천대받던 기생과 걸인까지 동참했습니다. [강동욱/진주문화원 향토연구소장 : "기생들이 앞장서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그리고 주모자 6명이 검속(검거)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