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의 기자수첩]권력비리와 증거기록 삭제에 실수는 없다(20130529)

[변상욱의 기자수첩]권력비리와 증거기록 삭제에 실수는 없다(20130529)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변상욱 대기자 요즘 사회적 비난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사건이 서울 경찰청에서 벌어진 국정원 수사기록 삭제 사건이다.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사건을 수사한 경찰 컴퓨터 내의 기록을 경찰청 경감급 간부가 덮어쓰기 방법으로 삭제했다는 의혹이다. 경찰대학을 나와 사이버 수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온 간부가 검찰 압수수색 직전에 아차 실수로 자료를 지웠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청은 거기에 수사 기록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지워달라고 부탁도 안했는데 경찰청이 오버했다고 한다. 이 나라가 왜 이러나? 권력비리와 기록 삭제의 역사 지난 2010년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증거인멸을 위해 하드디스크를 폐기하는 수사 방해가 있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압력을 넣어 재산권까지 침해한 사건이다. 그러나 검사 측이 압수수색 하기 전에 이미 관련 하드디스크와 문서가 파기돼 물증 확보에 실패했다. 이 때 등장한 주인공이 스스로 몸통이라 자처한 청와대 이영호 비서관. "제가 자료 삭제를 지시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제가 몸통입니다. 몸통입니다"총리실이 불법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뒤 나흘이 지나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그 사이 관련 자료는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나마 파기하고 남은 자료와 통화기록 조회를 통해 청와대가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단서를 확보했지만 누가 봐도 깃털 수준에서 수사는 끝났다. 검찰 역사상 최악의 부실 수사로 꼽히는 사건이다. 국가 권력기관에서 벌어진 범죄의 증거기록을 관련자들이 삭제한 사건은 미국에 많다. 대표적인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궁지에 몰리자 자신의 수석보좌관과 사건은폐를 논의했다. 그런데 그 은폐모의마저 들통 났다. 닉슨은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발뺌한다. 문제는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가 자동으로 녹음된다는 것. 이 사실을 닉슨 참모 중 하나가 자백했고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는 두 사람의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내놓으라고 닉슨에게 요구했다. 닉슨은 국가기밀이라며 버티고 버티다 대법원까지 가서 항복하고 원본을 내놓았는데 테이프는 중간에 18분30초가 지워져버린 채로였다. 이 때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이 당시 백악관 비서 로즈 마리 우즈, "제가 대화를 기록할 때 녹음기의 삭제 페달을 실수로 밟아 지워졌어요" 정신없이 일하며 녹음하는데 전화가 걸려 와 이를 받다가 실수로 삭제 페달을 발로 밟은 채 시간이 18분 흘렀다는 황당한 진술이었다. 그러나 사무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전화 받으며 발로 녹음기 삭제 페달을 밟으려면 팔과 다리를 스트레칭 하듯 벌려야 하고 그렇게 18분을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더구나 비서 스스로도 현장 재연 과정에서 녹음기 페달에서 발을 떼는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결국 거짓말이 들통 나고 진짜 원본이 제출되면서 닉슨의 변호인마저 "내가 속았다"고 탄식하며 닉슨을 떠나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