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에 장원급제한 조선의 천재 성리학자
#history #조선 #korean #shorts #신사임당 #구도장원공 #십만양병설 #이황 율곡이이는 1537년 1월17일 출생하여 1584년 2월27일에 사망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어머니가 유명한 신사임당이시죠 이이는 29살에 마지막 9번째 장원급제 하여 관직에 오르기전에 3년간 어머니를 그리워해 시묘살이를 하였죠 (16세~18세) 그리고나서 아버지가 첩을 들이자 절로 들어가 속세와 연을 잠시 내려놓기도 합니다 (당시 나이 19세) 그가 절을 떠난 시기는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22살에 노씨와 결혼했다고 전해지니 적어도 21살에는 절을 떠난걸로 보입니다 추후 율곡이이의 이러한 경력탓에 다른 유학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데 당시엔 불교를 배척하다시피 하던 시기였으니까요 26살에는 다시 부친상을 겪게되면서 또다시 3년동안 상을 치루게 되구요 아직은 그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것이 정론으로 여겨지고 있긴하나 사실상 그당시 십만명의 군사를 양병할수있었을까 에대한 의구심이 남아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사후 8년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니 율곡이이가 걱정했던 허약해져있던 군대를 바로잡았어야 한다는게 맞았던 셈이죠 물론 류성용이 그나마 권율과 이순신을 적극 천거하여 만약을 대비 하긴했지만 지금도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율곡이이가 10년만 더 살아계셨더라도 하는 실용적인 성리학을 주장하며 많은 개혁을 추진하려했던 그였지만, 정작 살아 생전에 받아들여진건 하나도 없고 나중에 그를 따르는 서인들의 세력에 의해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