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5.18 제대로 진상규명 해야!_1부_시선집중광주_20170511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15~07:53 ■ 연출 황동현 ■ 작가 정유라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올해가 5 18 광주 민주화 운동 37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5 18의 진실을 왜곡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는데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5 18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 규명 그리고 제자리 찾기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518민주화 운동의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 오늘 준비했습니다 5 18 구속 부상자회 김공휴 부회장 오늘 함께 하십니다 안녕하십니까 ◆ 5 18구속부상자회 김공휴 부회장(이하 김) - 네 안녕하십니까 ◇ 황 - 올해 5 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37주년을 이제 맞았는데요 부회장님께서 이 생각하시는 5 18에 한 말씀 해주시죠 ◆ 김 - 네 이번 37주년 5 18 광주 민주화 항쟁 기념행사는 남다르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정리를 해봅니다 대선이 끝나고 저희들이 바라던 그리고 촛불 정국이 바라던 그런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바뀐 정권에서는 5 18의 제대로 된 진실 그리고 사실 수년 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행사 당일 날 님을 위한 행진곡 부분 이번에는 매년 그랬듯이 하루 전날 리플렛 순서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순서에 재창으로 이렇게 명시되어서 나오지 않을 것으로부터 그래서 사뭇 기대가 되는 37주년 행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황 - 문재인 대통령도 5 18에 대한 뜻을 깊게 새기겠다고 이야기 했고 또 헌법에도 이것을 새기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5 18에 대한 진상 규명이 현 정부 들어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갖지 않을 수 없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 김 - 네 그렇습니다 저희 관련자뿐만 아니고 사실 광주 시민 그리고 관련자 가족들도 이 정권 교체에 대한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로서 하셨던 공약 이러한 것이 상당히 진실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감은 부풀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정권에서 정말 5 18의 미연의 숙제들이 해결될 것이라 하는 기대감을 참 많이 갖고 있습니다 ◇ 황 - 80년 5월 18일 이야기로 되돌아 가봤으면 좋겠는데요 그 당시 우리 부회장님의 기억으로 5 18 일어났던 당시를 간단히 정리를 해주시죠 ◆ 김 - 12 12 이후의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 되고 있었고 광주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16일 날 횃불상회를 했지만 17일은 아주 광주가 조용했죠 그런데 실질적으로 17일 날 계엄확대가 되면서 확대 계엄 발표 이전에 광주를 향해서 계엄군들이 진압 진입을 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광주를 타깃으로 해서 신군모참타를 해야겠다는 목적이 이미 돼 있었고요 그래서 18일 날 사실적으로 전대 정문에서부터 오후에는 시내로 진입하면서 학생뿐만이 아니고 어린아이, 여자, 노인 할 거 없이 그들에게 항의를 한다는 가 반에 하는 시민들을 향해서 무차별 장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됐죠 ◇ 황 - 이 사실을 확대시키기 위한 의도성들이 있었다는 거네요? ◆ 김 - 네 그렇습니다 ◇ 황 - 그렇다면 부회장님은 어떻게 5 18과 인연을 맺게 된 거죠? ◆ 김 - 그래서 저도 사실 18일 날 시내를 나왔다가 계엄군들이 시내에 있는데서 시민들하고 같이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으로 몰려서 계엄군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합니다 그래서 죽지 않을 만큼 많이 맞고 우여곡절 끝에 도망을 가게 되었고 도망가서 사실 집에서 있는데 저녁 내 잠을 못자겠더라고요 억울하고 분하고 무엇 때문에 내가 맞아야 하는지 그것도 나라를 지켜야 될 군인들이 왜 국민을 향해서 이런 만행을 저지르나 그래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19일 날 다시 나오게 됩니다 시위대에 합류해서 그러한 이유 원인들을 들어보니 정말 기가 막힌 이미 계엄 확대가 발표하기도 전에 광주를 향해서 계엄군들을 투입을 했다는 것이죠 광주는 그러한 자기들의 정권 찬탄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했다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1일 도청에서 집단 발포, 이 현장에 있으면서 그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시민들을 향해서 자동 소총이죠 그런 무기로 집단 살상을 한다는 자체를 봤을 때 그러한 것들이 이해 못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해가 되는 상황이 돼서 도저히 더 이상 울분을 삼킬 수 가 없어 그날 무기를 들고 참여하게 된 겁니다 ◇ 황 - 발포현장에도 계셨단 말씀을 하셨는데 군인들이 저항하지 않은 국민들에게 먼저 발포를 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 김 - 그렇습니다 ◇ 황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자, 누가 발포를 지시했는가의 부분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이야기 되지 않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 김 - 저도 여러 군데에서 이야기를 합니다만 우리 국민들이 촛불집회를 더군다나 보셨으면 다들 아주 깨어있습니다 사실 그런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밝히지 않았어도 군 명령 체계지 않겠습니까? 그런 명령을 누가 내렸냐 하는 것은 국민들 스스로가 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형식을 하고 있는 거죠 ◇ 황 -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 군부에서의 자의권 차원이였다고 얘기하는 부분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번에 회고록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도 써놨던 데 부회장님께서 봤을 때는 그런 것들 어떻게 이해가 되십니까? ◆ 김 - 그건 정말 일말의 말 할 가치조차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이 21일 계엄군들이 집단 발포를 할 때 그 시민 군중들이 , 그 때는 시민군이 아닙니다 왜냐면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시민 군중입니다 시위대에 불가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집단 발포를 했습니다 ◇ 황 -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에 집단 발포를 했다는 거잖아요? 그 이후에는 시민들이 우리가 살기 위해서 스스로가 무장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무장을 시작하신 거네요 ◆ 김 - 그리고 또 있습니다 마을 앞에서 놀고 있던 초등학교 4학년 전제수 군, 그 다음에 중학교 1학년, 이 들은 계엄군이 난사한 총에 맞아 사망을 했습니다 또 임신 8개월의 최미애씨는 집 앞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고 사망을 했습니다 또 여고 3학년 박연숙 양 같은 경우는 계엄군 총에 17발 무려 맞고 사망을 했습니다 박연숙 양 같은 경우에 계엄군에 어떤 대항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자의권 발동을 할 수 있게끔 했기에 17발이나 여학생에게 총을 쏠 수 있었는가 초등학교, 중학생 얘들이 집 앞에서 놀면서 계엄군들에게 무슨 해를 해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자의권 발동이라는 건 이건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