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시리즈] 서병학, 임천택, 박창운
2024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나는 대한(大韓)의 사람이다! 임천택(林千澤, 1903~1985, 애국장, 1997) 서병학(徐丙鶴, 1885~미상, 애족장, 2021) 박창운(朴昌雲, 1889~미상, 애족장, 2011) 1 세 남자의 독립운동 행적 찾기에 앞서서 1) 조국에서 멕시코로 1905년 1,018명의 한인들이 멕시코의 남부 살리나 크루스(Salina Cruz) 항구에 첫발을 디뎠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멕시코 이민이 시작된 것이다 멕시코에 간 한인은 대부분 본국에서의 절망 때문에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20대 초반의 젊고 활기찬 사람들이다 멕시코에 도착한 한인의 눈 앞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일이 매일 벌어졌다 특히 이들에게 에네껜 농장에서 4년간의 갖은 고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 한인들의 고통은 1909년 5월 농장에서 풀려나면서 해방됐다 이후 멕시코 한인들은 국민회 메리다(Mérida) 지방회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갔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멕시코 한인의 이민사는 해외 한인 독립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멕시코 한인 사회의 역사는 크게 여섯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제1기 멕시코 이주부터 에네껜 농장 시대로 한인들이 고된 노동에 종사하던 시기 ▫ 제2기 에네껜 농장에서 해방된 1909년 5월부터 1920년까지 멕시코 혁명이 진행되던 시기 이때는 한인들이 멕시코의 각지로 흩어져 유랑하던 기간임 ▫ 제3기 1921년부터 멕시코 한인들 가운데 약 300명이 쿠바로 재차 이민을 시도하면서 한인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 현지화가 진행되던 기간 이 시기 멕시코 현지에서는 소노라 왕조(Sonora, 1923∼1934)와 카르데나스(Lazaro Cardenas, 1934∼1940)의 통치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근대 국가의 기틀이 갖춰짐 ▫ 제4기 1941년부터 1945년까지로, 멕시코 혁명이 완전 종식되면서 이민 1세가 대부분 은퇴하고 1 5세와 2세가 중심이 되어 한인 사회를 이끌어 가던 시기 이 기간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으며, 멕시코 한인의 경제가 안정되어 감 미주의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연결되어 조국의 독립 운동에 매진함 ▫ 제5기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이다 한인 이민 1세들이 사라지고 2세, 3세들이 한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기간 이때는 민족적 정체성보다 한인들 간의 친목과 단결에 중점을 둠 ▫ 제6기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중남미 이민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이민자들이 주류를 이루어 감 2) 멕시코에서 쿠바로 1921년 멕시코의 한인들 가운데 약 300명이 쿠바로 재이민을 갔다 한국에서 멕시코로 이민 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쿠바 이민사는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 제1기 1921년부터 1929년까지로 한인들이 쿠바로 이주·정착, 그리고 국민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기간 ▫ 제2기 1930년부터 1941년까지 대공황 이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대공황으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삶이 궁핍해짐 이런 어려움에도 쿠바 한인들은 국민회를 중심으로 경제적 난국을 극복하고자 노력함 ▫ 제3기 1942년부터 1945년까지로 국민회를 중심으로 한인들이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광복 사업에 열중하던 시기 특히 쿠바 한인들은 1943년 재큐한족단을 조직하여 대외 선전 활동을 하면서 독립 운동 자금을 후원 ▫ 제4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항일 운동의 강력한 힘이 사라지자 한인들 간의 결속의 끈이 느슨해져 버리면서 도시로 흩어진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