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고개 와 용산 옛 신학교

왜고개 와 용산 옛 신학교

신용산역 용산우체국정면에서 왼쪽편 길로로 200m 현재 국군 중앙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기와를 만드는곳이었는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중림동 약현 성당, 명동 성당건물에 쓰인 붉은 벽돌도 여기에서 구운 것이라 전해진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그리고 1886년병인박해 때 순교한 베르뇌 주교 등과 남종삼, 최형, 홍봉주 등이 암매장되어 잠시 머물다간 곳이다. 또한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도 새남터에시 교우들이 찾아내어 잠시 이곳 근처에 가매장했다가 미리내로 모서 갔다고증언하고 있다. 코로나로 안으로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많아서 옛 용산 신학교는 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자고등학교 교정 예수성심상 한국 천주교의 신학교는 1855년 충청도 제천 배론[1]에 세워진 성 요셉 신학교에서 시작되었으며,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배론 신학교는 폐교된다. 이어 신학교육을 담당한 예수성심신학교는 1885년 부엉골[2]에서 처음 문을 열었으며 2년이 지난 1887년 3월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현위치로 옮겨졌다. 이곳 일대는 원래 용강산을 굽어보던 함벽정 터로 이곳에서 성직자들 이 참수된 한강가의 새남터와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피를 흘린 당고개가 가까이바라보인다 하여 고종 23년(1886년) 천주교회에서 구입하였다. 두 건물 모두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코스트(Coste) 신부[3]가 설계하였다. 예수성심신학교 교사 건물은 1891년 5월 6일 공사를 시작하여 1892년 6월 25일 축성식을 올렸다. 건물의 양식은 명동성당 주교관과 흡사한 조오지안 양식의 벽돌조 건축물인데, 둥근 아치형 창호와 더불 어 간결하고 장중하게 치장된 내부구조가 특이하다. 성당은 그 10년 후인 1902년에 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