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17 / 다시 닦지 말고 / 히브리서 5:11-6:3

히브리서 강해 17 / 다시 닦지 말고 / 히브리서 5:11-6:3

[히브리서 강해 17] ‘다시 닦지 말고’ Ⅰ 훈련이 아니라 실전 1 신앙 생활 성경은 ‘하나님과 백성’, ‘하나님과 자녀’로 하나님이 인간의 ‘주’ 즉 주인이라고 선포할 때 주인으로서 권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을 강력하게 강조합니다 주인이니까 백성과 자녀를 돌보아야 하고, 공급해야 하고, 인도해야 하고, 보살펴야 하고 백성과 자녀가 자유와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죄의 원리, 죄의 가치, 죄의 기준, 죄의 개념, 죄의 원리, 죄의 방식, 죄의 사고가 우리 주변에서 24시간 365일 아주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죄는 졸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놀지도 않고 아주 부지런하게 아주 열심을 다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죄는 장소와 영역과 분야에 한계가 없습니다 성도의 개인 생활, 가정 생활, 직장 생활, 취미 생활, 종교 생활 등 말 그대로 모든 곳에서 죄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의 책임과 역할에 충실하여 성도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훈련이라는 방식, 고난이라는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삶이 이미 고난이고, 이미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2 훈련이 아니라 실전 모든 인간들은 이미 치열한 죄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성도의 선택사항이 아니고, 피할 수 있는 것이나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가 부지중에 자신을 이런 상황에 노출한 것이 아니라, 죄가 아주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 성도 자신과 성도 주변에 존재하면서 때로는 성도를 속이고, 때로는 성도를 미혹하고, 때로는 성도를 넘어뜨리고, 때로는 성도를 파괴하려고 아주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노리고 있는 대상에서 제외된 성도는 없습니다 죄가 간과하고 있는 순간, 죄가 소홀히 여기는 상황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항상, 범사에’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성도의 삶의 모습, 실상입니다 죄가 가장 잘하는 것이 ‘속이는 것’입니다 죄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고, 무엇에든 있고, 어떻게든 있는데 결정적으로 아주 중요한 것은 죄가 매우 치밀하고 교활하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말씀으로 죄를 분별하며 선한 싸움을 하여야 합니다 Ⅱ 다시 닦지 말고 1 어린 아이, 장성한 자 히5:12~14절에 ‘선생’과 ‘초보’,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와 ‘젖이나 먹어야 할 자’, ‘젖을 먹는 자’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 ‘어린 아이’와 ‘장성한 자’,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는 자’와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대조되었습니다 6:1~2절에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와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의 대조가 나옵니다 마치 성장이나 성숙에 대한 권고같아 보입니다 히브리서가 1~5장부터 아들, 예수 그리스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의 사역을 강조해 왔고 6장 이후에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해 나가다가 느닷없이, 뜬금없이, 문맥의 흐름과 전혀 맞지 않게 갑자기 성도의 성장, 성도의 성숙에 대해서 강조할까요? 물론 서신서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과 성도가 해야 할 일을 다룹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역을 설명하고, 이이서 하나님의 사역을 근거로, 기초로, 터전으로 성도에게 가능해진 행동을 권면하는 순서입니다 히브리서도 예수에 대한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하는 순서나 구조가 다른 서신서들과 유사합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다가 갑자기 5:12절부터는 성도에게 성숙하라고 주제를 바꾸고 6:9절부터는 원래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맹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갈까요? 2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5:12),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6:1) ‘교훈의 터’(6:2)가 나옵니다 우리 신앙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도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살아가는 기준은 교훈의 터입니다 이것들을 버리면 성장, 성숙이 가능합니까? 만약 본문이 성장에 관한 권고, 성숙에 대한 권면이라면 최소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와 같은 표현은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도가 성숙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그리스도의 도’이고, 성도가 성도답게 살아가기 위한 근거도 ‘교훈의 터’이기에 성숙을 위해서는 이것들을 더욱 바르게 알아야 하고, 이것들을 더욱 철저하게 붙잡아야 하고, 이것들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지 결코 버려야 할 것이 아닙니다 3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라는 표현에서 ‘초보’는 ‘근원, 기본원리, 기원, 원천’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12절을 풀이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얼른 버리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는 권고가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에 대해서 더욱 바르게, 더욱 철저하게, 더욱 확고하게 알고 그 내용에 대해 선생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에 대해서 다시, 또 배워야할 처지에 놓여있으니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집착해서, 초보에 머물러 있어서 더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를 붙들고 있지 않아서,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를 따르고 있지 않아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를 견고하게 붙잡고 있어서, 이미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뭔가 다른 게 있나 찾아다니는 헛수고를 하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너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1장부터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즉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에 대해 설명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장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기초에 관한 내용, 본질에 관한 내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장에 관한 내용이라면, 여전히 초보에 머물러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내용이라면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가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는 통달했다 아주 익숙했다 더 이상 누구에게 배울 게 없다 그러니 제발 다음단계로 나아가라’고 나왔을 것입니다 4 다시 닦지 말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에서 ‘초보’가 ‘기원, 근원, 시작, 기본원리’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도의 기본원리’이고, 이것은 버려서는 절대로 안 되고 도리어 굳게, 강건하게, 견고하게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도의 기본원리’에 대해 ‘죽은 행실을 회개함, 하나님께 대한 신앙, 침례들,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에 대한 교훈의 터’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도의 기본원리를 앞에 두고 있었으면, 여섯 가지 교훈의 터를 잘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도의 기본원리’, ‘교훈의 터’를 앞에 두고 있다면, 간직하고 있다면 버릴 것이 아니라 복습하고 Back to the Bible,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에서 ‘다시’는 ‘again’이 아니라 ‘new’입니다 당시 성도들이 복음 말고 다른 게 없나, 더 새로운 것이 없나, 더 신기한 것이 없나, 더 신령한 것이 없나 하면서 자꾸 다른 것을 붙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그리스도의 도의 기본원리, 교훈의 터를 앞에 두라,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원리, 그리스도의 도의 기본원리, 교훈의 터를 바르게 알고, 굳게 잡고 있어야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스도의 도의 기본원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