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9 와유당의 성경암송 1439 - 신명기 22:5 - 홍찬혁 목사

20241209 와유당의 성경암송 1439 - 신명기 22:5 - 홍찬혁 목사

1439(2024년 12월 9일 월) 신명기 22:5 아내가 제게 옷 한 벌을 입어보라고 건네줍니다. 제가 입어보면서 말했습니다. “여자 옷 같은데?” 아내가 대꾸합니다. “요즘 여자 옷 남자 옷 구별이 어디 있어?” 차를 타고 가면서, 행인들의 모습을 봅니다. 여자인 듯 남자인 듯 헷갈립니다. 옷뿐만 아니라 머리가 긴 것이며 예쁘장한 모습이 영락없는 여자입니다. 자세히 보니 남자입니다. 요즘에는 여자들만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화장을 한다고 합니다. 아니 멋쟁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화장에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남자들도 성형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말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여자가 남자 옷을 좀 입었기로서니 그것이 여호와께 가증한 자일까요? 남자가 여자 옷을 좀 입었기로서니 그것이 여호와께 가증한 자일까요? 수련회 같은 곳에서 촌극 할 때 여장 남자나 남장 여자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지, 가증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여자 옷과 남자 옷이라는 구분이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들이 입은 것은 치마로서 우리가 보기에 확실히 여자 옷입니다. 유목민의 여자 옷은 우리에게 남자 옷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문맥을 살펴봐도 본문의 말씀이 조금 생뚱맞습니다. 바로 앞의 1-4절은 네 형제의 우양이 길을 잃은 것을 보았다면 못 본 체하지 말고 그 주인을 찾아주라는 것입니다. “1.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지니, 3.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지니라.”(신 22:1-4) 본문 5절 말씀에 이어지는 6절은 어미 새와 새끼를 함께 취하지 말 것에 관한 율법입니다. “6.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신 22:6-7) 그러니 5절의 남자의 의복과 여자의 의복에 관한 율법은 문맥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개의 주석을 찾아봐도 별 신통한 설명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구별하신 창조 질서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구분을 혼동하지 말고 구별하라는 명령으로 이해합니다. 의복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남녀 구분이 사라진 오늘날,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적용될 말씀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키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적 정체성이 남자와 여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요즘 사회적 동향에 이 말씀은 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LGBT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 소수자들을 구분하는 오늘날, 본문의 말씀을 고대 세계의 세계관으로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전혀 적용될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로서만 기억해도 될까요? 아니면 본문이 의도하는 의미를 찾아서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해야 할까요? 구약성경의 율법에 등장하는 수많은 가증한 일들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신 22: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