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23.08.06 불연속성 증명(디모데후서 4:14-16)
불연속성 증명 2023년 8월 6일 디모데후서 4:14-16 (4:14)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4: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구리 세공업자인 알렉산더라 초기부터 사도 바울을 미워하고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의 협력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도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사도를 도리어 공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알렉산더의 배신에 대해서 무시해서는 아니됩니다 알렉산더가 즉흥적으로 사도 바울을 대적한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심사숙고 해서 결정을 내린 겁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모조리 거짓이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알렉산더가 처음부터 사도 바울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도중에 변질된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해 봐야 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딤전 1:19-20) 알렉산더가 사도를 공격한 지점은 사도가 전하는 말의 내용이었습니다 즉 사도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왜 사도 바울을 공격 안하고 있지요? 복음을 알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사도이든 예수님이든 아예 관심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일상에 전폭적으로 몰입해 있는 형편입니다 이를 달리 설명하면 이러합니다 ”우리는 우리 일상의 연속성을 지켜내려 한다“고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나 자신에게 끊어진 것을 ‘나의 죽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가 평소에 사는 것은 나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사도 바울을 공격하지 나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직접 나를 공격하지 않는 이상 내몰라라 하는 식입니다 바로 이런 현상은 최종적으로 ‘나의 이익’과 ‘내 몫’을 노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겁니다 알렉산더가 사도 바울을 떠난 것은 자기에게 돌아올 몫과 이익이 모호해서 그러합니다 마치 가룟 유다가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알렉산더라는 인물을 성경을 통해서 늘리 공객합니다 이는 ‘우리’라는 것 속에는 ‘나 자신’이라는 의식이 빠져 있음을 전제로 하는 ‘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오면서 그들은 죽음 속에서 나온 백성이 됩니다 이들에게 있어 ‘나’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에 해당되는 분은 따로 계십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즉 성경에서 인정하는 ‘우리’라는 집단은 유일하게 ‘나’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과 더불어 죽음에서 나온 ‘우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동일한 음료와 동일환 양식을 먹게 됩니다 더는 이 ‘우리’ 속에서 나를 개별적 가치를 내세울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바로 ‘불연속성’입니다 나로부터의 불연속성입니다 ‘나’가 사라지고 ‘우리’ 속으로 들어온 겁니다 이를 때 이 ‘우리 안에’ 있는 그 ‘나’ 안에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없었음을 기쁘게 증명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기둥을 세우는데 그 기둥 안에 철근이 들어있지 않아 필히 무너지게 된 형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최후의 날에는 바로 이 ‘철근’이 들어 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찾아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구약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은 ‘우리’로 움직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 개인의 일탈로 인해 전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레위지파들은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같은 백성들을 죽이기도 합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민 25: 7-9) 심지어 제사를 드리는 레위지파 자신들이 그들이 잘 아는 율법과 제사법에 의해서 죽게 됩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속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민 16:31-33) 즉 율법은 외우거나 지식이 아니라 율법대로 죽음으로서 세상 모두가 율법 성취차원으로 진행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사도 바울을 대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전히 자신의 익과 몫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대해서 대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그 외 모든 사람들의 인품이나 성격이나 행동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들은 필히 망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모든 인간 내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겁니다 따라서 참으로 주님이 함께 있는 자들은 기쁘게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 속에 하나님이나 예수님 계시지 않고 ‘우리’ 속에만 하나님도 계시고 예수님도 계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나의 구원을 고집하게 만드는 ‘나’가 아니라 ‘우리’ 안의 예수님이 하신 그 분의 일로 인하여 새로운 ‘우리’가 생긴 겁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을 공격하는 적은 곧 오늘날 성도들의 적도 되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나의 이익을 생각하기 전에 이미 예수님에 의해서 의인되었음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