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시각장애인 아버지 살린 지적장애인 딸

[사노라면] 시각장애인 아버지 살린 지적장애인 딸

눈을 떴다 흐릿한 정도가 심하다 몇 분간 눈을 감았다가 살며시 떴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한참 뜸을 들이던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이젠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겠네요 시각 장애 1급입니다 조만간 양쪽 눈이 안 보이실 겁니다 " 가슴이 순간 '쿵'하고 내려 앉았다 황수동(58)씨는 의자에서 일어나다 그만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두눈을 감싸 안았다 "고쳐줬어야죠 어떻게 해서든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이런게 어딨어요 " 그는 의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의사는 말없이 고개를 떨꿨다 2009년 그의 나이 쉰 여섯살때였다 "우리 불쌍한 딸 소영이는 어떻게 키우라고" 눈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제 내 사랑하는 소영이의 눈을, 코를, 못 볼 수도 있구나 "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것이 내게 허락한 마지막 시간이구나 ' 그는 1980년 군대 제대 후 만물상회를 운영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으며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관공서에 전기자재 및 청소도구를 납품했던 아버지 덕에 일은 수월했다 인간적이고, 친화적인 성격탓에 공무원들은 그를 친동생처럼 챙겨주며 일을 맡겼다 결혼 자금이 마련되자 결혼도 했다 스물 일곱 해 되던 해 첫째딸 소영(32)씨가 태어났다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복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하늘은, 행복을 줄때 시련을 준비하는 법 "소영이가 100일 되던 해 다락에서 굴러 떨어졌어요 크게 다쳤는데, 기적처럼 살았지요 그땐 살았으니 됐다 싶었어요 " 사고 이후 소영씨의 학습 능력은 크게 떨어졌지만, 가족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영씨 밑으로 두명의 동생이 태어난데다, 일도 바빠져 자식을 살뜰히 챙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 아파트 까지 장만하고 여유가 생겼을땐, 그의 몸에 이상이 왔다 "1998년에 오른쪽 눈에 염증이 생겼어요 고름도 나오고요 1년간 버티다 병원에 갔더니 병명은 안 나오고 자가면역질환이라대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퍼다가 병원에 받쳤는데 " 병명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3-4년간의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감당하지 못할 병원비에 가세가 기울자 아내의 입에서 ' 이혼하자'라는 말이 나왔다 제 아무리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라도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 터 그 길로 집을 나와 흐릿한 눈으로 보문산에 올라갔다 살아야 할 의미가 없던 시간 죽음만이 허락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절망적인 일상의 삶에서는 죽을 이유가 분명했는데, 막상 죽음의 문턱에 서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는 죽으면 안될 명분을 찾고 있었다 "소주도 없고, 밧줄도 없네 그래, 소영인 또 어떻하고, 오늘은 그냥 가자 " 그 길로 그는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소영씨를 데리고 나왔다 비록 눈은 멀어가지만, 목숨 살려준 값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어도 살아갈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2008년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소영씨를 위해 황씨는 시립장애인복지관의 문을 두드렸다 비록 남들보다 못한 처지지만, 배움이 부족분을 채울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소영씨는 의외로 적응력이 뛰어났다 컴퓨터, 바리스타 자격증을 한번에 따는가 하면, 악기, 노래, 요리 등 못하는게 없는 똑순이였다 그런 소영씨의 모습을 보자 욕심이 났다 '대학을 보내자 ' 32살 소영씨의 지적능력은 7살 수준이지만 각고의 노력끝에 올해 그는 지역의 한 전문대학교 사회복지과 학생이 됐다 원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