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여행 day 7,8,9 | goodbye everything | 다시 울란바토르 | 바가가자린촐루 | 몽골 안녕 | 푸제투어 |

| 몽골여행 day 7,8,9 | goodbye everything | 다시 울란바토르 | 바가가자린촐루 | 몽골 안녕 | 푸제투어 |

| goodbye everything |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키워드는 ‘goodbye everything’이었다. 매일 밤, 오늘 하루 내 속에 담았던, 담겼던 모든 것과 작별하며 눈을 감고, 다음 날 비워진 마음으로 눈을 뜨고는 다가 올 모든 것을 환영하고 싶었다. 이 여행의 키워드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와 보니 조금 거창한 바람이었지만, 난 이 여행 동안 내 생의 모든 것과 아주 좋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가득 차 있던 주머니를 탈탈 비워내고 하루치 고통만, 하루치 기쁨만 담고 싶었다. 그렇게 지금보다 가벼워진 하루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사실 몽골에서 대자연을 마주하면 저절로 그리 될 줄 알았다. 말을 타고 푸르른 초원 위를 달리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놓게 될 줄 알았다. 밤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면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많은 것들이 내 안에서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나는 그런 간절한 희망을 품고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행 첫날에도 둘째 날에도, 작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얼 떠나보내야 하는지, 무엇과 이별하고 싶었던 건지, 내 삶에 끼어있는 찌꺼기가 뭐가 있는지조차 나는 알 수 없었다. 과거에 바다였다던 붉은 땅을 바라보아도, 비현실적인 푸른 하늘 아래에서 드몽이라는 소년과 말을 타고 달릴 때도. 나는 모든 순간 무척 행복했지만 어딘가 쓸쓸했다. 그리고 점점 조급해졌다. 당최 무엇을 떠나보내야 하는 건가. 내 안엔 무엇이 남아있고 무엇이 흘려보내야 할 것인가. 알고 싶었지만 많은 것이 흐릿했다. 애정만 남겨놓았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갑자기 밉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 사람의 미운 구석들만 떠오르는지, 어째서 상처받은 기억들이 이 여행지에서 되살아나고 원망 섞인 감정들만이 자꾸 내게 몰려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음과 영원히 작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내 안 어딘가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던 것일 테다. 나는 이 미움을, 이 질투를, 이 원망을, 이 못난 모든 것을 몽땅 몽골 바닥에 두고 가겠다고, 이곳의 자연은 이를 정화해줄 힘이 분명 있을 거라고, 그것들과 작별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윽고 셋째 날. 지랄 맞은 낙타를 타고 평소 하지 않던 욕까지 내뱉으며 씩씩 거린 바로 그 셋째 날. 셋째 날의 마지막 일정은 사막을 오른 후 정상에서 노을을 보고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사막의 정상에서 다 함께 맥주를 마시자며 동행자 여섯 명과 고비 맥주까지 한 캔씩 소장했다. 나는 왼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오른쪽 주머니엔 맥주를 넣고 한 손엔 썰매를 안고 사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니어 보이던 사막 등반은, 이제껏 내 모든 등산 경험보다 한 수, 아니 몇 수 위였다. (사실 등산 경험은 5번 이하이다.) 흙으로 다져진 땅이 얼마나 그립던지, 모래 안으로 사정없이 발이 빠져 들어가 다음 발로 내딛는 것 자체가 고난이었다. 나는 계속 발걸음을 위로 앞으로 옮겼는데 제자리였다. 아주 미세한 변화만 있을 뿐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나면서 속이 안 좋아졌고 토할 것 같았다. 모래에 철퍼덕 쓰러져서 얼굴을 파묻고 급기야 투루(우리의 막내 가이드)에게, 매고 있던 가방을 맡겼다.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던 가방을 사막에서 벗어던지고 ‘앞으로 오십 걸음만 가 보는 거야.' 나에게 말했다. 가방을 놓은 힘으로 오십 걸음을 더 가서 또 철퍼덕 쓰러졌다. 아주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렇게 오십 걸음 삼십 걸음 이십 걸음 삼십 걸음 나누어 걸으며 점점 아주 조금씩 위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십 걸음씩 몇 번을 더 올라가고 정상을 얼마 앞두지 않았을 때, 나는 나의 빨간색 플라스틱 썰매까지 투루에게 줘 버렸다. 그리고선 남은 구간을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내가 감당할 것이 온전히 내 무게뿐이 된 순간, 숨이 찬 건 매한가지였지만 어느 때보다도 힘겹지 않았다. 짐이 없어서인지, 내 몸 하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지. 기어 올라가며 기도했다. 내 걸음 하나하나에 미움을 버리게 해 달라고. 그렇게 이 사막 모래에 다 묻어 버리고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침내 사막의 정상에 올랐을 때, 나의 기도는 사라졌다. 정확히는 기도를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예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나는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사막의 반대편엔 아무도 밟지 않은 고운 모래언덕이 내 시야가 닿지 않는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고 오른편엔 노을이 지고 왼 편엔 이름 모를 바위산이 있었다. 정상 언저리에 걸터앉아 몸을 움직이면 우우우 하는 사막의 노래가 들렸다. 세상의 크기, 넓이, 아름다움, 깊이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마음에 가득 차 날려 보내고 싶었던 미움들이 모두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저 사랑하는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내 눈앞의 황홀경을, 자연의 위대함을 나누고 싶었다. 사랑만을 담은 마음이었다. 영상 통화를 걸었지만 닿지 않았다. 작은 아쉬움이 일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히 좋은 에너지가 갔으리라. 같이 보고 있지 않아도, 말로 전하지 않아도 분명히, 분명히 아주 맑고 건강한 에너지가 갔으리라. 그냥 알 수 있었다. 이런 자연이 존재하고 있는 줄, 이런 감정이 내게 올 줄, 이런 식으로 무언가와 작별할 수 있을 줄 나는 예상치도 못했다. 정확한 이해만이, 더 들여다보고 살피는 기울임만이 사랑이라고, 용서라고, 진심이라고 믿어왔건만, 이해가 없이도 이해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왔고, 들여다보지 않았어도, 애써 기울여 살피지 않았어도 미움이 가시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오만하게도 나는 가끔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나는 세상을 품을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임이 분명하다. 세상이 나를 이해하고 있고 세상이 나를 품고 있다. 사실 세상은 언제나 나를 훌쩍 넘어서서 나에게 넌지시 가르침을 준다. 내가 알아 왔던 것이, 내가 믿어 왔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것은 정말로 아주 작은 조각일 뿐이라고. 어쩌면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완전하게 이 세상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느낄 수도, 담아낼 수도 없으리라. 그저 세상이 내어주는 자리 한 틈에서 살아갈 뿐이리라. 다홍 빛 노을이 내 모든 곳을 구석구석 감싸 안아주었다. 그리고 기도가 나에게 흘러 들어왔다. 어느 날 밤이 온다 해도 또다시 아침이 올 것이므로 지는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세상은 반드시 내 인지보다 크고 내 이성은 세상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자연 앞에 부디 겸손해지게 해 주세요. 나의 고리에서 벗어나서 그냥 자연의 일부로, 도구로 살 수 있는 겸손한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내가 받은 상처가 아무리 크고 깊고 잔인하대도 자연 앞에서는 너무 자그마할 뿐이니 작은 감정들이 왔다가 가는 데에 연연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느 나라에선 노을도 찰나가 아니며 도저히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자연도 존재하니 멀찍이 서서 바라보고 더 깊은 이해와 사랑을, 언제나 그것만을 선택하게 해 주세요.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엔 아주 단정하고 맑은 마음으로 가장 크게, 가장 시원하게, 가장 진실되게 푸하하 웃었다. 다시 밟은 땅에서 얼굴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사막의 정상을 바라보니, 아직 내려오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노을은 더 짙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이 많았던 저녁이었다. 2022 소화모음집 나의 몽골 이야기 중 #몽골여행 #바가가자린초루 #울란바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