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오기까지는 / 문병란(낭송 최도순, 영상 개울 최영식)

새벽이 오기까지는 / 문병란(낭송 최도순, 영상 개울 최영식)

새벽이 오기까지는 / 문병란 새벽이 오기까지는 아직 우리들은 어둠에 익숙해야 한다 어둠에 스며들어 어둠의 일부가 되고 어둠과 속삭이며 오히려 어둠을 사랑하며 속속들이 어둠의 은밀한 가슴을 열렬히 두 팔로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아직 머언 한밤 중 아직 우리들은 깊은 잠에 빠져서는 안 된다 피투성이 내일을 끌어안기 위하여선 한 톨의 불씨가 되어 묻혀있어야 하고 이 기나긴 공방 비록 신랑이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잿빛 창가에 기대어 서서 먼 별의 약속을 믿으며 한 알의 꽃씨를 깊이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밤에 이루어지는 것 절망은 또 하나의 희망, 그것을 끌어안고 그것을 입 맞추며, 우리는 속속들이 어둠에 녹아들 줄 알아야 한다 피 젖은 어둠의 육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보라, 지금은 깊은 밤 모든 빛이 사라지고 온 누리 캄캄할 때 두 손을 모우는 자리에서 비로소 만나는 임의 모습 처절한 절망의 법도가 오히려 엄숙하다! 그리하여 새벽이 오기까지는 더 기다리고 있어야 할 기나긴 인고(忍苦) 보다 더 열렬히 사랑하기 위하여 보다 더 뜨겁게 입 맞추기 위하여 아직은 더욱 절망을 사랑해야 한다 한 톨의 불씨를 안고 스스로 어둠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 마리의 불나비는 온몸 불사루어 황홀한 향연! 차라리 어둠을 입 맞추며 한 줄기 불꽃 속에 타버리며 거대한 절벽을 부둥켜안고 온몸으로 사랑하는 절망을 배운다 온 누리 밝음 죄다 삼켜버리고 천근의 무게로 쩌 누르는 어둠 속에서 한 톨의 불씨로 타오르는 사랑이여 오 한꺼번에 살아버릴 뜨거운 가슴이여. #사단법인서은문병란문학연구소 #문병란시낭송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