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도량] 20. 선산 도리사
#신라최초절#구미도리사#김천직지사 오늘은 선산 도리사입니다 낙동강 구미보를 지나 태조산 초입에 이르면 큰 일주문이 나옵니다 일주문에는 '해동 최초 가람 성지 태조산 도리사' 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인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신라로 불법을 전한 아도 화상이 창건한 도량이기 때문입니다 일주문에서 약 5키로미터 정도 태조산 중턱까지 오르면 도리사가 나옵니다 도리사는 아도 화상이 창건한 도량입니다 아도 화상은 고구려에서 신라로 넘어와 고난에 찬 전법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삼국유사 '아도 화상전'에는 아도 화상의 삶을 '아도가 신라 불교의 기초를 닦았다'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후대에 경주 흥륜사에는 신라 불교를 빛낸 열분의 성인(聖人)을 모셨다고 하는데, 그 첫 인물이 바로 아도 화상입니다 아도화상은 위나라 사신이었던 아굴마와 고구려 여인 고도녕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도 화상이 5살이 되자 어머니는 아도 화상을 출가시키고, 16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있는 위나라로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굴마는 아들 아도를 현창화상의 문하에서 불법을 배우게 했고 3년간 공부한 후 19살이 되어 어머니가 있는 고구려로 돌아왔습니다 예지력이 있었던 어머니 고도녕은 고구려로 돌아온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신라 땅에는 천경림을 비롯하여 7곳의 과거불의 가람터가 있다 신라는 부처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땅으로 앞으로 불법이 깊이 전해질 곳이다 신라로 가서 불법을 전하도록 하거라 " 아도 화상은 어머니 말씀을 따라 고구려에서 신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전통적인 재래 신앙이 강해서 불교를 쉽게 전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도 화상은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선산 모례 장자의 집에 숨어 지내며 민중들에게 불법을 가르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중국에서 향을 보내 왔는데, 신라 조정에는 아무도 그 용도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아도 화상은 신라 수도 서라벌로 가서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향이라는 물건으로 태우면 그윽한 냄새가 납니다 만약 향을 태우며 정성이 신성한 곳까지 이르도록 간곡히 기도하면 무슨 소원이든지 영험이 있을 겁니다 " 그 후 신라 공주가 병이 위독하여 백방으로 약을 쓰고 의원을 불렀지만 효험이 없었습니다 아도 화상은 공주가 있는 방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윽한 향기가 차츰 퍼져 방안에 가득하고 아도 화상의 기도가 끝나자 공주의 병이 나았습니다 눌지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도 화상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아도 화상은 천경림에 절을 세워 불교를 널리 펴고 국가의 복을 비는 것을 바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즉시 이를 허락하여 불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눌지왕이 세상을 떠나고 새 임금이 등극하자 신라는 하루 아침에 불교를 핍박하고 아도 화상을 해치려 했습니다 그러자, 아도 화상은 다시 선산의 모례 장자의 집으로 돌아왔고 핍박을 피하기 위해 머슴이 되어 낮에는 소와 양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5년이 흐른 뒤 아도 화상은 행선지도 밝히지 않은 채 훌쩍 그 곳을 떠나버렸습니다 모례장자가 가는 길을 물으니 "나를 만나려거든 얼마 후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그 칡순을 따라오시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해 겨울, 기이하게도 정월 엄동 설한에 모례 장자 집 문턱으로 칡순이 들어왔습니다 모례장자는 그 줄기를 따라갔습니다 그 곳에 아도 화상이 좌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도리사 아도 화상 좌선대입니다 모례 장자를 보고 아도 화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오셨소, 모례 장자 내가 이곳에 절을 세우려 하니 이 망태기에 곡식 두 말을 시주하시오 " 아도 화상은 모례장자 앞에 작은 망태기를 내놓고 시주를 권했습니다 모례 장자는 기꺼이 승낙을 하고 다시 집에 내려와 곡식 두말을 망태기에 부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망태기는 두 말은 커녕 두 섬을 넣어도 차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례 장자는 전 재산을 다 시주하여 도리사를 세웠습니다 모례 장자의 시주로 절을 지은 아도 화상은 잠시 서라벌 나들이를 하고 돌아왔는데, 절이 세워진 태조산 아래 때 아닌 복숭아 꽃과 배 꽃이 만개하여 눈이 부셨습니다 그래서, 절 이름을 '도리사(桃李寺)'라고 하였습니다 신라 불교 첫 도량이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기 100년 전에 완고한 신라로 와서 고난 속에 불법을 전한 아도 화상의 전설이 전하는 도리사입니다 이 땅에 불교가 뿌리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선지식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라 땅에 최초로 불법의 씨앗을 뿌린 도리사의 중심 전각은 극락전입니다 극락전은 조선 후기에 조성한 작은 전각이지만, 단청 색깔이 은은하고 정갈합니다 극락전의 아미타 부처님 상호가 단아하고 힘이 있습니다 극락전 앞에는 돌로 기단부를 쌓은 독특한 석탑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이형석탑입니다 단단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주는 화엄석탑입니다 극락전 뒤에는 '태조선원'이라는 선방이 있고, 그 앞에는 부도탑처럼 생긴 석종형 사리탑이 있습니다 태조선원은 성철 스님이 출가하기 전에 1년간 참선 수행을 하고, 문경 봉암사 결사 전에도 도반들과 함께 선수행을 했던 곳으로 성철 스님과 인연 있는 유명한 선방입니다 부도탑처럼 생긴 사리탑은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세존 사리탑'입니다 1977년, 세존 사리탑 해체 공사할 때 8세기경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한 금동육각사리함과 함께 그 속에 영롱한 사리 1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사리 중에서 가장 영롱하고 큰 사리라고 합니다 국보로 지정된 금동육각사리함은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사리함 안에 있던 크고 영롱한 진신사리는 도리사 가장 높은 곳인 적멸보궁 진신사리탑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적멸보궁에서 바라본 태조산 산세가 웅장합니다 꽤나 높은 곳에 도리사가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신라로 온 아도화상이 깊은 태조산 도리사에 은거하며 불법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고난 속에서도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2,000년이 지나 오늘날까지 우리가 대승불교를 신앙하고 공부할 수 있는 바탕에는 아도화상과 같은 보살들이 고난 속에서도 전법을 향한 신념과 열정으로 불법을 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신라 불교 초전 법륜지, 선산 도리사! 전법의 서원으로 신라에 불법을 전한 아도 화상의 향기 속에 극락전 아미타 부처님 앞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며 신앙할 수 있는 좋은 도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