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일깨우는 국민교육헌장 고 박정희 대통령의 음성으로 다시 들어봅니다.
개설 우리 나라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이념과 근본 목표를 세우고, 민족중흥의 새 역사를 창조할 것을 밝힌 교육지표이다 1968년 6월에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당시 문교부장관 권오병(權五柄)에게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총망라하여 교육장전(敎育章典)을 제정할 것을 지시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문교부에서는 헌장 제정을 위하여 26명의 기초위원(起草委員)과 48명의 심의위원을 선정하였고, 개혁위원 가운데 박준규(朴浚圭)·이만갑(李萬甲)·김성근(金聲近)·정범모(鄭範謨)·이규호(李奎浩)·박희범(朴喜範) 등이 제출한 논문을 토대로 하여 대학교수 20명을 초청, 3회에 걸친 초안작성준비회가 마련되었다 그 해 7월에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주재로 제1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였으며, 박종홍(朴鍾鴻)·이인기(李寅基)·유형진(柳炯鎭) 등이 헌장 초안을 다듬었다 이 헌장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까지 대통령이 주관한 전체회의 4회, 국무총리가 주관한 소위원회의 4회가 개최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12월 5일에 대통령이 선포하였다 이 헌장의 제정 소식을 들은 자유중국의 총통 장제스(蔣介石)는 “기선을 빼앗겼다 ”고 부러워하면서 자유중국 주재 한국대사 김신(金信)에게 자료수집을 당부하였으며, 서독의 볼노브(Bollnow)도 독일 청년의 정신적인 교량역할을 하여 줄 수 있는 헌장 제정에 고심하고 있던 차라고 하면서 찬사를 보내 왔다 선포 및 폐지 민족의 주체성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개인과 국가의 일체감을 통한 민주복지국가의 개화를 중심으로 한 이 헌장은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기본정신과 실천목표가 되어 보급되었다 선포일인 12월 5일은 1973년 3월 30일에 대통령령으로 정부주관인 기념일이 되었다 1993년까지 교육부에서 주관하여 헌장이념의 구현을 다짐하는 기념식을 베풀고, 스승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는 각종 기념행사를 하였다 1994년부터 기념식행사는 개최하지 않았으며 이후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삭제되었다 2003년 11월 27일 대통령령 제18143호에 의거하여 국민교육헌장선포기념일이 폐지되었다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출처] [사설] 국민교육헌장의 부활이 필요하다|작성자 박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