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빼야하는가? / 양자역학으로 본 비움의 미학 / 덜어냄의 철학 / 양자역학 / 동양철학 / 아인슈타인 / 닐스보어

왜 빼야하는가? / 양자역학으로 본 비움의 미학 / 덜어냄의 철학 / 양자역학 / 동양철학 / 아인슈타인 / 닐스보어

[계발] 비워 있음의 힘_심리적 거리두기의 힘 세상은 단순하다. 단순한 것과 단순한 것을 단순하게 더했을 뿐이다. 모든 것은 단순함으로 이뤄져 있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본질이 단순함을 이야기한다. 말장난 같은 이 말을 조금 풀어서 이야기 해 보겠다. 어떤 물질을 조개고 쪼개고 더이상 쪼개질 수 없을 정도로 쪼개다 보면 우리는 분자라는 화합물의 최소 단위를 만난다. 이렇게 작은 화합물 조차, 말 그대로 '화합물'이다. 분자란 원자가 결합하여 물질의 성질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즉, 이 분자를 다시 쪼개면 원자가 된다. 쉽게 말해 이산화탄소는 탄소원자와 산소원자 두 개가 붙어서 일종의 독창적인 성질이 되는 것이고, 물이란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가 붙어서 물이라는 독창적인 성질이 되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참으로 복잡해 보이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는 118개 뿐이다. 다시 말해 118개를 이렇게 붙이고 저렇게 붙여서 조합하는 방식으로 세상 만물이 모두 정해진다. 다시 원자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원자는 더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다. 하지만 그런 원자 조차 대략적인 구성이 있다. 원자란 양성자와 중성자로 결합되어 있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 이쯤되면 미시세계에 대해 머리가 지끈 거릴 테지만, 우리가 이 원리를 너무 가까이에서 사용하고 있따.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자력 발전소가 그렇다. 강력하게 붙어 있는 우라늄 원자핵의 중성자를 임의로 충돌시켜 양성자와 중성자가 분열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리고 튕겨져 나간 중성자는 다른 원자핵을 충돌시키며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여기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얻어내는 것이 핵분열 에너지다. 이 에너지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단순한 원리가 바로 도통 이해가 안되던 핵발전의 원리다.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원자핵의 주변에는 전자 녀석이 있다. 우리가 교과서나 기타 책을 보면 원자핵 주변을 전자가 빙글 빙글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자는 원자의 주변을 돌고 있지 않다. 전자는 일정 확률로 원자핵 주변의 어딘가에 있을 뿐이다. 이것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물질이 아닌 파동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전자나 중성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기도 하다. 이런 아이러니한 일은 현대과학에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토마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우리가 흔히 '관찰자효과'라고 부르는 확인했다. 세상 모든 것은 파동과 입자로 이뤄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는 다르게, 파동이면서 입자이기도 한 이중성을 갖게 된다. 즉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일종의 파동이며 그것의 존재가 확률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의 놀이를 하지 않는다네'라는 말로 부정했지만, 결국 아인슈타인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는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오묘하게 드나들며 어쩌면 과학이 우리 심리를 치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주게 하기도 한다. 굳이 파동과 입자의 설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바라보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의 존재는 의심이 되긴한다. 앞서말한 작은 입자인 원자의 구성인 원자핵과 전자 간의 거리를 보면 그럴 수 있는데, 원자핵이 서울광장에 있는 축구공 크기라면 전자는 수원에 있는 먼지 크기이다. ​ 이것은 원자핵과 전자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인터넷이나 책에 표현된 원자의 구조는 이 거리를 축약하여 설명하지만 실제로 원자는 물질보다 공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고로 원자와 원자의 조합인 분자 또한 결국 광대한 빈 공간들의 조합일 뿐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엄청난 빈 공간들로 이뤄진 입자 집합체일 뿐이며, 그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도가에서는 만물의 근원을 '무(無)'라고 했으며 불교에서는 만물의 근원을 공(空)이라 했다. 결국 세상 만물 모두가 비어있고 없다는 것을 오랜 동양 철학에서는 알고 있었다. JTBC의 아는형님에 출현한 프로듀서 박진영을 보고 물었다. '뭘 먹어서 머리가 세지 않는건가요?'이에 박진영이 한 말이 참으로 기가막혔다. '좋은 걸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좋은 걸 안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 세상은 채우고 채우고 채워야 완성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한다. 하지만 완전함이란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서 온다. 순수한 결정체는 무언가를 채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을 제거함으로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몸에 좋은 것을 먹거나 더 낫기 위해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훈련하기를 반복한다. 그런 채움에 익숙한 이들에게 정작 '명상'이라는 비우는 작업은 훨씬 먼 일이 된다.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 나아지기 위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오랜 시간을 부딪친다. 하지만 실제 오랜 기간을 함께 할수록 싸움과 갈등이 빈번해지게 된다. ​ 실제 인접국과 사이가 좋은 나라는 거의 없으며, 여행과 동거는 아무리 친한 사람과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적당한 거리는 관계를 회복하고 심리를 편안하게 한다. 원자와 전자의 거리만큼이나 넉넉한 것은 '없음'이면서 '있음'이다. 전자의 존재가 확률로 존재함으로써 모든 것은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생각 중독자들인 현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거리를 두며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연습이다. 만물에 대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넉넉함은 채워져 있는 빽빽함이 아니라 비워져 있는 넉넉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ihans_m/222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