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고대가 –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고대가 –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손양원(1902-1950) 작사, 고대영 작곡의 복음성가 ‘주님 고대가’입니다. 다른 제목으로 첫 가사를 따서 ‘낮에나 밤에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작사자인 손양원은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 기독교 장로인 손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19년 칠원 보통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던 중동학교(지금의 중동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3.1운동 이후 부친이 독립운동으로 징역을 살게 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1920년 4월에 자퇴하게 됩니다. 그는 1938년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어, 1939년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애양원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애양원은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용하는 시설이었습니다. 그는 순교하기까지 평생을 이곳에서 환자들에 대한 전도와 봉사에 전념했습니다. 1940년에 평양의 주기철 목사처럼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체포되어 1945년 8.15 광복 때까지 수감 생활하면서 건강이 악화하여 실명 위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이 귀하다는 말로 아내인 정양순 사모에게 편지를 보내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에 손양원은 목사가 되어 다시 애양원에서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손양원의 두 아들인 손동인과 손동신이 우익 학생 단체인 전국 학생연맹에서 활동하다가, 이를 안 좋게 보던 반란군 세력이 기독교도라는 사실을 빌미 삼아 두 형제를 순천의 동천 인근에서 살해한 것입니다. 끔찍한 일을 겪은 가족들과 애양원 사람들이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의 장례 예배를 드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무슨 인사를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 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반란이 진압된 이후 손양원 목사는 실제로 반란군 인사 중 안재선이란 좌익 학생이 손 목사의 아들 형제를 살해했다고 자백하자, 이를 용서하고 자기 양자로 삼았습니다. 당시 격분한 마을 사람들과 애양원 환자들이 안재선 씨를 처형하려 할 때, 손 목사는 당시 여고생이던 딸 손동희에게 안재선이 마을 사람들에게 처형당하는 것을 말리고, 자기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말합니다. 손동희는 자기 친오빠들을 죽인 살인자를 살리고, 가족이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려 봤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이기지 못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건지고 손양원 목사의 양아들이 된 안재선은 참회하고 진심으로 손양원 목사를 자신의 아버지로 따랐다고 합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북한군이 호남 지역으로 진격해 오자, 손양원 목사는 환자들을 두고 피난 갈 수는 없다며 끝까지 애양원에 남았다가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1950년 9월 28일 총살당했습니다. 손양원 목사 장례식에서는 장례의 상주를 맡은 양아들 안재선이 가장 슬퍼했다고 합니다. 손 목사는 안재선이 목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손 목사의 두 아들을 죽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을 참회하며 평신도로 사역했습니다. 그가 197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양 동생이었던 손동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천국에 가서 너네 두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라고 합니다. 그의 아들인 안경선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안재선이 신학교에 입학도 하고 성적도 우수했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자격지심에 목사가 되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 안경선은 ‘신학교에 가서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 달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의 생애를 다룬 책으로, 딸인 손동희가 쓴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와 소설 ‘사랑의 원자탄’이 있습니다. 이렇듯 손양원 목사는 쉰 살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며, 그 누구보다 값진 선한 목회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작사한 ‘주님 고대가’에는 주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도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 내 주님 자비한 손을 붙잡고, 면류관 벗어들고 찬송 부르면, 주님 계신 그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 신부 되는 교회가 흰옷을 입고, 기름 준비 다 해 놓고 기다리오니, 도적 같이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6. 천년을 하루 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박강우TV #주님고대가_낮에나밤에나 #손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