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유적지 분황사, 왕릉

선덕여왕유적지 분황사, 왕릉

분황사 (芬皇寺) 향기로운 황제(선덕여왕)의 사찰이란 뜻으로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 하였으며 자장과 원효스님이 머물던 곳이다 분황사에는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삼층모전석탑(634년, 국보 제30호), 신라시대 우물 호국룡변어정(삼룡변어정),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석 받침돌(1101), 약사여래입상(1774) 등이 있다 선덕여왕릉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은 자기가 죽을 날짜를 예언하며 낭산 남쪽(도리천)에 장사 지내 달라고 했다 왕릉의 높이 6 8m, 지름 23 6m 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며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 보충설명 1 삼층모전석탑(국보 제30호)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9 3m) 현재는 3층이나 원래 7층 또는 9층 이었을 것으로 추정함 1915년 일본인에 의해 해체 수리시 2,3층 사에에서 나온 돌사리함에서 실패, 가위, 바늘 등의 바느질 용구가 발견됨 모전석탑 감실문 좌우에 금강역사, 기단부 네 귀퉁이에는 통일신라시대 사자상이 탑을 지키고 있다 2 신라시대 우물 호국룡변어정(삼룡변어정)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성왕11년(795) 당나라의 사신이 신라를 지키는 호국룡 세 마리를 물고기로 변화시킨 뒤 가져가려는 것을 빼앗아 우물에 놓아주어 살게했다고 한다 3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석 받침돌(1101) 고려 숙종6년(1101) 원효스님이 동방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비석이나 시호가 없어서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대성화쟁국사 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웠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가 비석을 받혔던 받침돌을 경내에서 발견하여 차신라화쟁국사지비석 이라고 친필을 음각으로 새겼다 4 보광전에 있는 약사여래입상(1774) 왼손에 들고 있는 건칠제 약그릇의 뚜껑 안쪽에 건륭삼십구년을미사월이십오일조성야 라는 붉은 글씨가 있어서 조선 영조50년(1774)에 만든 불상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