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조르바를 읽고 쓰다

그리스인조르바를 읽고 쓰다

카잔차키스 作 『그리스인 조르바』 를 읽고 쓰다 산투르 / 최아영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나는 자유다 ”―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내가 참으로 용감했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등단지에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열정만 앞서 덜커덕 작품집을 내어놓고 말았다 선배 작가들께서 누누이 말씀을 해오셨다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독서를 다양하게 많이 해야 한다고 그간 초싹거리고 돌아친 행보가 다 민망했다 의류쇼핑 따위나 즐겨했던 내가 나이 들어 문학서 구입에도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허겁지겁 사들인 책들이 미처 몸 풀 새도 없이 책장에 꼿꼿하게 들어차 있다 어느 날 무심코 한 권 펼쳐 든 것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책이었다 어느 해 여름 나는 지은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따라 크레타 섬에 숨어들었다 대략 주워들었던 두 남자의 광기가 몹시 궁금했다 저자이면서 화자이기도 한 카잔차키스는 갈탄 광을 개발하는 사업가다 그는 자신의 갈탄 광이 있는 크레타 섬에 들어가기 위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조르바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짧은 시간 안에 조르바라는 사람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만다 마침내 조르바를 자신의 갈탄 광사업의 조력자로 끌어 들이기에 이르른다 그런데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마초적인 매력을 지닌 조르바는 사업주인 카잔차키스를 두목이라 부르기로 했고 그리스의 젊고 나약한 지식인 사업가 카잔차키스는 그래서 창졸간에 두목이 되었다 이리하여 지성과야성의 환상적인 콜라보가 이루어졌고, 두 남자의 야생이 시작된 거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두목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야성에 점점 함몰되어 가는 듯 해 보였다 예컨대 지금까지 그가 지켜온 보편적인 상식과 알게 모르게 몸에 밴 지적인 오만함도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구가해 왔던 가치와 인식의 변화됨을 마치 신에게 고백을 하듯 홀로 읊조려 대기도 했다 반면 ‘먹물 인간’ 카잔차키스는 창백하고 야윈 긴 손가락만으로 책갈피 속 세상을 만나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극히 관념적일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영혼 하나도 온전히 다스려내기에 버거울 때가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르바는 달랐다 이렇다 할 학식도 없었고 안정된 생활과는 거리가 더욱 멀었다 상스러운 언어를 상용하는가 하면 일체의 형식과 체면 그리고 절제 따위를 거부하며 살아왔다 하나에서 열까지 많은 것들에서 열등한 처지에 있었고 언제나 위험 속에 노출된 삶이었다 또한 즉흥적인 데다가 모험을 즐겼으며 무엇보다도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무책임하다거나 이기적이지는 않았다 내로라하는 지식인 축에 끼지는 못했지만 정의로운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던 거다 특히 책상머리 담론으로 진리를 뇌까리는 지식인들에게는 온몸으로 저항하는 조르바였다 이처럼 대개 정글 속 사자처럼 거칠게 굴긴 하였지만 때로는 나약한 인간을 위해 무릎을 꿇고 자신의 등을 인간에게 내어주는 사막의 낙타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에게 빵과 고기와 포도주는 단지육체를 살찌우는 질료였던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들이야말로 진실로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이라 그는 인식을 하고 있었으며 형이하가 형이상을 구축하는 가치체계라 여기는 매우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술잔을 기울이다말고 벌떡 일어나 벽에 걸려있는 ‘산투르’를 무릎에다 올려놓고 미친 듯이 연주를 시작했다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듯 온몸으로 말이다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칠흑 같은 섬을 완전히 삼켜버릴 듯이 포효를 했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 소리는 단조가 되어 검은 파도를 넘나들었고 이는 다시 차고 올라 달빛을 타고 흘렀다 그리하여 어둠속으로 침몰될 뻔 한 제 영혼을 달처럼 건져 올린다 얼핏 보는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와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속은 이렇게 감쪽같이 닮아있었던 거였다 ‘젊음이여, 영혼을 팔아 밥벌이를 해야 하느냐 감히 이르나니 추억일 수 있게만 하여라 너의 기억됨이 슬프지 않게 ’ 절절한 이 외침은 며칠간 조르바에 빙의되었던 내가 나에게 던지는 주술이었다 손주자랑을 물어 나르기에도 바쁠 이 나이에 철 지난 문학작품에 심취하게 되다니! 그래서 나는 다시 청춘인 것이다 조르바에게 ‘산투르’가 있었듯이 나에게도 버금가는 그 무엇이 하나쯤 있어 주었으면 참 좋겠다 ✽산투르 : 산투르(페르시아어: روتنس(는 이란의 전통악기이다 사다리꼴 모양의 몸통 위에 72개의 현이 달려있다 ‘산투르’라는 이름의 뜻은 페르시아어로 ‘100개의현’이라는 뜻이다 오른쪽의 현은 강철로 만들며, 왼쪽의 현은 놋쇠로 만든다 전형적인 산투르의 음역은 3 옥타브 가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