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의 여성독립운동가 윤형숙 열사를 아시나요? 현장연결(호남, 서새롬)
앵커 : 시청자 여러분 윤형숙 전도사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102년 전,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벌인 3 1 만세운동에 앞장서며, 대한민국이 주권국가임을 세계 만방에 알린 신앙의 선배이자 또 대한민국의 애국 열사인데요 앵커 :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전도사로 지역을 섬겨온 윤형숙 열사가 활동했던 여수지역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서새롬 기자나와 계시죠? 기자 : 네, 저는 지금 전남 여수시 웅천동에 위치한 여수항일독립운동기념탑 앞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태극기를 흔들다 왼팔이 잘린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 분이 바로 윤형숙 열사입니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여수제일교회 김성천 목사님과 윤형숙 열사의 조카이자, 여수독립유공자회 윤치홍 사무총장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 윤형숙 열사 묘지 위치와 어떻게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됐나요? 윤치홍 : 저의 고모이신 윤형숙 열사는 순천 선교사집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순천 성서학원을 이수한 뒤, 광주 수피아여학교를 다녔다 당시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는 항일운동의 본거지였는데 재학중에 일제에 저항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민족의식을 키워왔다 19살 되던 해 1919년 3 10 광주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태극기를 든 왼족이 잘리고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큰 부상을 입었고, 옥고를 치르게 됐다 전남 여수시 화양면에 윤형숙 열사를 모신 묘지가 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게 열려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공적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기자 : 이렇게 사역하셨던 윤형숙 열사는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김성천 목사 : 1950년 6 25 전쟁당시 인민군이 여수까지 내려오게 됐는데, 그 때 당시에 반동분자로 낙인찍혀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약 200여 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민족의 아버지이자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손양원 목사님이다 여수에서 계몽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윤형숙 열사도 그 당시 죽임을 당했다 기자 : 광주만세운동 이후에 윤형숙 열사가 여수에 와서 많은 사역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김성천 목사 : 만세운동으로 큰부상을 입은 윤형숙 열사는 이후 마르다윌슨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자신의 고향 여수로 온다 여수제일교회, 여수중앙교회 등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며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문맹퇴치운동, 남북통일과 공산당의 잔학상을 전하는 등 개인의 이익보다 민족과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기자 : 이런 윤형숙 열사의 정신을 다음세대에게 어떻게 전하실 계획이신가요? 윤치홍 : 윤형숙 열사는 2004년 건국포장에 추서된 순국열사이다 이 정신이 다음세대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길 바란다 김성천 목사 : 윤형숙 전도사님은 3 1 만세운동과 6 25 전쟁을 거치며 누구보다 격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나라를 사랑했던 그 마음을 이제는 우리들이 본받고 다음세대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기자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윤형숙 열사의 순교정신을 되새기며 지금까지 호남본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