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동 삼층석탑 & 추원재, 효자비

안기동 삼층석탑 & 추원재, 효자비

안동 추원재 분 류 : 사묘재실 지 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지정일 : 1973 8 31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안동시 안기동 산101-1 소유자 : 김봉재 이 건물은 고려말 충신이며 효자인 상촌 김자수(桑村 金自粹)의 어머니인 일직 손씨의 묘소 아래에 있던 재사다 김자수는 1351년(충정왕 3) 현 안동시 금곡동에서 태어났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 지위에 올랐으나, 고려왕조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은둔하였다 태종이 형조판서로 제수하여 부르자 아들에게 관을 준비하고 뒤따르게하여 경기도 광군 오포면 추현에 이르러 자결하였다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신련리에 신도비와 비각 그리고 묘소가 있다 원래 추원재는 월곡면 노산리 마을 어귀의 산기슭에 있었다 상촌의 정효비각이 거리를 두고 마을의 내오산(內奧山) 아래에 있었으나 1973년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후에는 바로 재실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신실(神室)과 전실(온돌방)을 중심으로 그 좌우와 전방 3면에 각 1칸씩의 마루를 돌렸고 신실과 전실 벽은 개방하여 분합을 달았다 구성은 특이하며 필각형 불발기 창을 가진 분합은 아랫쪽 머름중방에 얹어 안전하게 장치하였다 변주는 모두 두리기둥이며 난간은 계자각이나 신실 양측칸에는 머름중방만을 꾸몄다 보편적인 재실과는 특색을 달리한 특수한 건축형식이라 하겠다 (안동시청) 효자비 분 류 : 기타 지 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 지정일 : 1973 8 31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안동시 안기동 산101-1 이 비와 비각은 추원재(追遠齋)(효자 김자수 묘하(金自粹 墓下)의 재실)와의 관련 유구로서, 석비 1기를 포함한 정려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 위치로 옮겨진 후에는 비각 하방에 신문을 설치하여 추원재(追遠齋)를 정점으로 하여 세 건물이 상하 일직선상에 배치되도록 하였다 비각이 이건된 다음 해에 김노경(金魯敬)이 비문을 撰하고 그의 아들 추사 정희(秋史 正喜)가 이를 썼다 이 비는 1973년 12월 안동댐 건설로 안동시 월곡면 노산동(安東市 月谷面 老山洞) 394번지에서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비각은 사면단간( 팔작기와집이고, 두리기둥에 이익공(二翼工)을 받쳤으며 홑처마이다 사면주간(四面柱間)은 모두 살대로 돌렸으며, 매간 창방 위에는 중심부의 일좌씩의 화반(華盤)이 받쳐져 있다 비는 4면 각 1간의 비각 내에 있다 비석은 화강석이며, 머리에 화경형개석(花頸形蓋石)을 얹고 장방대석으로 받침하였다 비표(碑表)에는 "효자고여도관찰사김자수지이(孝子高麗都觀察使金自粹之里)"라 제(題)하였으며, 기사(記事)는 비음(碑陰)에 각자(刻字)하였는데, "여모분삼연후홍무갑인문과장원위지도관찰사"("廬母墳三年後洪武甲寅文科壯元位至都觀察使")라는 등 그 내력이 기각(紀刻)되어 있다 비각 내오(碑閣 內奧)에는 "상촌선생비각기사(桑村先生碑閣紀事)"(고종 15년인 1878년 김노경찬·김정희서(金魯敬撰·金正喜書))라는 편액(扁額)이 게안(揭安)되어 있고, 비각 바깥 앞처마에는 "비각이건기"("碑閣移建記")라는 편액(扁額)이 게안(揭安)되어 있다 비각이건기(碑閣移建記)는 "화산부저효자비각……강어적분약구월상한십육대손상진근기"("花山府底孝子碑閣……强 赤奮若九月上澣十六代孫商眞謹記")라 세겨져 있는데, "강어적분약"("强 赤奮若")은 "정축"("丁丑")이므로 앞에 나온 "상촌선생비각기사"("桑村先生碑閣紀事")가 쓰여진 1878(고종 15)보다 1년 앞선 정축년(丁丑年)에 쓰여진 것이 거의 틀림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안동시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호 안동안기동삼층석탑 (安東安寄洞三層石塔) 안기동 민가 안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없어져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네모난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설치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낙수면이 짧아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가 치켜올라갔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받침수가 1층은 6단, 2층은 5단, 3층은 4단으로 되어 있어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꼭대기에는 후에 새로 만들어 얹은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모양의 둥근 돌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의 양식과 밑면의 받침 수가 일정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안기동석불좌상(보물 제58호)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교 있어 같은 사찰 내의 유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말·고려초 안동지역의 불교조각 유물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안기동삼층석탑 #안동추원재 #효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