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下-30) 「孟子(맹자)」 제4離婁(이루下)편 30장
公都子 曰匡章을 通國이 皆稱不孝焉이어늘 夫子 與之遊하시고 又從而禮貌之하시니 敢問何也잇고 孟子 曰世俗所謂不孝者 五니 惰其四肢하여 不顧父母之養이 一不孝也요 博奕好飮酒하여 不顧父母之養이 二不孝也요 好貨財하며 私妻子하여 不顧父母之養이 三不孝也요 從耳目之欲하여 以爲父母戮이 四不孝也요 好勇鬪狠하여 以危父母 五不孝也니 章子 有一於是乎아夫章子는 子父 責善而不相遇也니라 責善은 朋友之道也니 父子責善이 賊恩之大者니라 夫章子는 豈不欲有夫妻子母之屬哉리오마는 爲得罪於父하여 不得近이라 出妻屛子하여 終身不養焉하니 其設心에 以爲不若是면 是則罪之大者라하니 是則章子已矣니라 --------------------------------------- 禮貌 공경함 博 넓을 박, ‘쌍륙 박, 노름 박’ 奕 클 혁, ‘바둑 혁’ 博奕 쌍륙과 바둑. 轉하여 도박(賭博)을 뜻함 私 편애할 사 戮 죽일 륙, ‘욕될 륙’ 狠 개 싸우는 소리 한, ‘어긋나고 사나울 흔, 강퍅할 흔’ 屛 병풍 병, ‘가리어 막을 병’ 匡章은 제나라의 장군으로『戰國策』에 그에 관한 행적이 나온다. 광장은 匡子, 章子라고도 하는데 戰國시대 齊 威王과 宣王 때의 명장이다. 威王 말년 에 秦나라와의 전쟁 중 벌어진 일화로 더욱 유명해졌다. 제나라와 진나라의 군사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제나라의 척후병들이 세 차례에 걸쳐 위왕에게 광장이 진나라에 투항할 것 같다고 보고하였고, 이에 조정 대신들도 광장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으나 위왕은 광장이 절대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장이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신들은 위왕의 先見之明에 감탄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이때 위왕은 “그 사람됨이 죽은 아비도 속이지 않는데, 어찌 신하가 되어 산 임금을 속이랴(夫爲人子而不欺死父인대 豈爲人臣欺生君哉아)?”라고 반문했다. 앞서 광장의 아버지는 부인이 불륜을 저지르자 살해하여 마구간 바닥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아버지에게 죄를 얻은 어머니이지만 광장에게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광장은 아버지에게 제발 어머니를 용서하고 무덤을 쓰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아버지는 끝내 허락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이후 위왕은 광장을 장수로 임명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어머니의 무덤을 마련하도록 허락해주겠다고 했으나 광장은 사절했다. 그 이유인즉 ‘어머니인 啓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는데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의 허락 없이 어머니 무덤을 고친다면 이는 죽은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 되므로 감히 할 수 없다(臣非不能更葬先妾也이다 臣之母啓得罪臣之父한대 臣之父未敎而死하니 夫不得父之敎而更葬母이면 是欺死父也라 故不敢이나이다)’는 것이었다. 이 일이 위왕으로 하여금 광장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광장과 맹자와의 교류가 위 내용이다. ---------------------------------------------------------------------------------------- 맹자의 광장과의 交遊는 『논어』 자로편 제23장의 자공과 공자와의 문답이 잘 대변해준다. 자공이 “향인들이 다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옳지 못하다.”고 대답했다. 다시 “향인들이 다 미워하면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또 “옳지 못하다.”고 하면서 “향인들 가운데 선한 자가 좋아하고, 그 불선한 자가 미워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대답했다(子貢이 問曰鄕人이 皆好之면 何如니잇고 子曰未可也니라 鄕人이 皆惡之면 何如니잇고 子曰未可也니라 不如鄕人之善者好之오 其不善者惡之니라)는 내용이다. 군중심리를 이용해 농단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내용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악하다고 하더라도 분명 선한 점이 있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더라도 분명 불선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무리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피며, 무리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니라(子曰衆惡之라도 必察焉하며 衆好之라도 必察焉이니라 - 『논어』 위영공편 제26장).”고 했고, “좋아하면서도 그 악함을 알며, 미워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천하에 드무니라(好而知其惡하며 惡而知其美者 天下에 鮮矣니라 - 『대학』).”고 했다. 맹자는 세상 사람들이 광장을 불효라고 하여도 그가 결코 불효자가 아니고 매우 신실한 사람임을 알았으므로 주변의 쑥덕거림에 관계없이 광장과 교유하였다. 다만 광장은 붕우지간에 통하는 責善을 부자지간에 적용한 잘못은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은혜를 크게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광장의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광장과 아버지의 責善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무덤 하나 세울 수 없는데다가 아버지조차 제대로 모실 수 없었던 광장은 결국 처자식으로부터 받는 봉양을 끊고 평생을 홀로 살았다.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광장은 자신만 편하게 처자식으로부터 봉양을 받는다면 그 죄가 매우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광장만의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광장에 대해 보편적인 효를 적용하여 불효라고 한다면 맞지 않기에 맹자는 광장을 이해했고, 그와 교유한 것이다. 장수로서는 훌륭했지만 인간적으로는 불행했던 광장을 품어준 맹자의 어진 마음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