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인 지금도 군자는 못되지요 ㅡI was a snob and far to be a gentleman yet

나는 소인 지금도 군자는 못되지요 ㅡI was a snob and far to be a gentleman yet

사람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현재의 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모습까지 알아야 현재 모습의 당위가 담보되고 잘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책상물림이 아닙니다 금수저도 아닙니다 많은 일을 겪었고 체험했으며 그 때마다 느꼈었지요 왜 좋은지 왜 나쁜지를 압니다 그래서 저의 쓰ᆞ말ᆞ노는 정당하다 믿습니다 담배도 많이 피고 술도 많이 먹고 골프도 좋아했고 화투도 많이 했습니다 골초였습니다 사무실, 차, 집에 담배가 없으면 불안할 정도였고 하루 두갑반을 피워댔습니다 30년전 구정 전날 그날 따라 집에도 차에도 담배가 없어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담배 사오라하기도 뭣해 그냥 자고 다음날 아침 담배를 찾는데 문 연 곳이 없고 차례 지내느라 어른들 오시니 담배 필 생각을 못했었지요 대소가 세배 가면서 담배 사려 이곳저곳 다 기웃거려도 파는 곳이 없고 누구에게 빌려도 보려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곁에서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아내와 초롱한 두놈 눈망울 앞에서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담배하나 때문에 구차하게 살아야하나 생각이 미쳤고 그 자리에서 끊었고 이후 한번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화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골프후 하프스윙으로 이어지는 판에는 안 낄수도 없었습니다 어느날 친구들과 고스톱판이 벌어졌는데 예의 못먹어도 Go 정신때문에 가진돈 다 잃어버리고 가리라도 하려하니 이 야박한 놈들 현금없으면 안된다는겁니다 분기탱천 머리끝까지 열받은 저 곡우에게 전화해 집에 있는 돈 다 가져오라 한 때가 새벽 1시였습니다 부시럭거리는 곡우땜에 잠 깨신 어머니가 내 노름하는 줄 아시고 저 올 때까지 잠 안자고 기다리셨다가 그 돈마져 잃고 들어오는 내게 '애비야 그거 하지마라 하면 안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화투를 끊었습니다 골프 또한 그랬습니다 건설사 사장 하다보니 일주에 두번, 많으면 세번까지도 골프를 쳤습니다 당시 모든 비지니스는 골프장과 술집에서 이뤄질 때였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아시겠지만 접대 골프 참 피곤합니다 니이샷 굳삿을 홀마다 외쳐대고 기브는 기본 돈은 무조건 잃어줘아 했으며 목욕도 하는둥 마는 둥 빨리나가 대기하고 있어야했습니다 자연 스트레스 쌓이니 돈 잃어주는 접대골프보다 무관한 친구들끼리 진짜 내기에 빠져들게 되고 만원으로 시작했던 단위도 점점커져 OB한방이면 왠만한 봉급쟁이 한달치 봉급이 나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건 골프가 아니라 전쟁이었습니다 어느 날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이래선 안되겠구나 그래서 그간 오간 돈 모두 주고받고 내기골프를 끊었습니다 이후 잔돈 빼먹기 스킨스나 라스베가스정도 이외는 하지 않습니다 현충일을 맞아 이같이 뜬금없는 고백성 글을 올리는 이유는 담배 그거 백해무익하고 화투나 내기 골프 그 또한 정도 지나치면 사람 피폐케 만드는 것이니 하지말라 말하는 것이고 끊는다 안한다 수백번 말하면서도 아직도인 이땅의 수많은 미생후배님들에게 나도한다 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내가 지금 공자 맹자를 말하고 心不負人 面無慙色(심불부인 면무참색)을 말하며 호호 당당 담담을 말하지만 불과 몇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세속적 욕망과 욕심에 눈 어두웠으며 오만과 교만이 하늘을 찌르던 사람임을 밝혀 아직도 저같은 사람들에게 저이도 하는데 난들 왜 못 하겠나 용기를 주고 제 자신에게도 그런날 있었음을 잊지말라 당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나아가 저 또한 사람인지라 위악이란 영악을 통해 앞으로 혹 언행일치 (言行一致), 지행합일(知行合一) 못하더라도 크게 나무라지 말라는 심사아니라고도 말 못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그칩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한 십여년 지나 끈 떨어지고 기운 떨어지고 어느 누구 내 그렇다 시비할 일도 없게되면 그땐 정말 테헤란로 휙휙거리던 시절 이야기나 개발시대 숨겨진 비화들도 공개하게 될지 그 때까지 다들 평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