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14. "함께 말라 죽을 친구 구해요"..10대 섭식장애 주의보

2022. 03. 14. "함께 말라 죽을 친구 구해요"..10대 섭식장애 주의보

[EBS 뉴스] 인터뷰: 이지은 (가명) / 18세 "스타킹 같은 데 말라가지고 남는다거나 아니면 연예인 분들도 양말이 막 흘러내려 간다 이런 거 보면서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 " 거식, 식사를 거부한단 뜻이죠 프로아나는 이 거식증을 찬성한다는 뜻입니다 서로의 거식증을 응원하며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공유하는 프로아나가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마른 몸을 강요하는 문화 아래서 청소년 프로아나들은 오늘도 고통 속에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진태희 기자가 집중 보도합니다 [리포트] 18살 지은 씨(가명)가 매일 먹은 것을 기록하고 있는 식단일기입니다 2월 2일 하루에 한 끼, 요플레와 떡볶이, 연어 덮밥 등을 먹었지만 몸 안에 남은 음식은 없었습니다 빨간색으로 쓴 음식들은 모두 먹은 즉시 토해냈다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먹고 또 토했다는 자책감에 다음 날은 새벽에 선식을 먹고 하루 종일 굶었습니다 지은 씨의 식단일기는 이런 자신을 향한 질책과 후회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지은 / 18세 (실제 일기 낭독) "누군가는 살기 위해 먹는다고 한다 나는 토하기 위해 먹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싫다 다 짜증나 " 지은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3년 동안 폭식과 거식을 반복해 총 30kg를 뺐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다이어트,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지은 (가명) / 18세 "토를 안 하면 살이 찌니까 어차피 내가 (먹고 토하는 걸) 멈출 수 있으니까 빼고 싶을 때까지만 빼고 멈춰야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막 조금만 먹어도 다 올라와 버리니까" 섭식장애는 음식을 거부하거나, 식욕을 참지 못해 지나치게 많이 먹는 등 음식 섭취에 장애를 겪는 정신 질환입니다 지은 씨의 사례처럼 섭식장애는, 거식과 폭식을 함께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이 찔까 두려워 음식을 아예 먹지 않는 거식증과, 음식을 마구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하는 폭식증 이 같은 섭식장애는 저체온, 저혈압, 무월경, 탈수 등 여러 합병증을 동반합니다 특히 청소년 시기에 섭식장애를 겪으면 영양실조와 함께 인지·정서적 발달에 큰 지장을 받습니다 16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12년 동안 섭식장애를 겪은 혜영 씨 그사이 탈모, 저혈압, 급성 췌장염까지 왔습니다 인터뷰: 윤혜영 / 섭식장애 극복중 "항상 쓰러질 준비를 하고 걸어 다녔었어요 병원에서는 너무 심장이 느리게 뛰니까 당장 입원하라고 했었는데 저는 그게 살이 빠지는 증상 중에 하나라고 계속 부인했었죠 " 19년 10대 여성 14 4% 최근 5년 동안 거식증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총 8,417명 연령대별로 보면 10대 여성이 1,208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특히 최근엔 SNS 등을 통해 또래 청소년들 사이에서 잘못된 다이어트 방식을 권장하고 응원하는 게 일종의 유행이 됐습니다 프로아나 이른바 프로아나 찬성한다는 뜻의 'pro'와 거식증 'anorexia'가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마른 몸을 동경하는 이들은, '뼈말라' '씹뱉' '무쫄' '폭토' 등 그들만의 은어를 사용하면서 소통합니다 트위터나 틱톡같이 10대들이 즐겨 쓰는 SNS에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변비약이나 다이어트 보조제를 과도하게 복용했다는 인증 글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윤아 / 섭식장애 전문 상담사 "(상담하다 보면) 서로 굶기도 하고 그런 방법도 서로 전달할 정도로 그게 너무 만연해 있다는 거예요 마른 체형을 되게 좋아하고 따르려고, 선호하고 이게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 전문가들은 청소년 섭식장애의 원인 중 하나로 미디어의 영향력을 꼽습니다 드라마, 예능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의 마른 몸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깡마른 몸에 대한 동경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홍지아 교수 / 경희대 미디어학과 "날씬한 것이 일단 굉장히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날씬해야지 뭔가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이다 날씬해져야지 뭔가 사회적인 어떤 긍정적인 칭찬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 전체가 특히 미디어가 전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하고 있는데" 각종 합병증에 청소년기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섭식장애 하지만 10년 넘게 섭식장애를 겪고도 불과 2년 전부터 치료를 시작한 혜영 씨 사례처럼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스스로 섭식장애를 인정하지 않거나,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율리 교수 /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 병(거식증)이 굉장히 자아 동조적이라서 (본인이) 익숙해지고 병 자체를 추구하는 행동들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이것을 고치고자 하는 동기가 초기에 있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 자녀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부모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블로그에 4년째 17살 딸의 섭식장애 치료기를 올리고 있는 인화씨는 부모가 자녀의 섭식장애를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인화씨 역시 딸의 섭식장애 사실을 알게 된 건 딸의 키가 크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에 방문했던 병원에서의 진단 덕분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인화 씨 (가명) "(거식증으로) 병원에 데려온 경우는 거의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리나라는 학원에 다니니까 워낙 애들이 밖에 오래 있고 먹고 토하는 것 사실 엄마들이 잘 모르거든요 " 치료도 쉽지 않았습니다 국내외 섭식장애 전문 병원을 찾아가 보고, 섭식장애 관련 책은 닥치는 대로 읽어봤지만 딸아이의 섭식장애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청소년 섭식장애, 보호자가 막상 알게 되더라도, '잠깐 하다 말겠지' '혼자서 이겨낼 수 있겠지'와 같은 마음에 무심코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섭식장애는 신체적인 질환이 아니라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정신 질환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주변에서의 적극적인 개입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특히 식습관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인터뷰: 김율리 교수 /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식사가 굉장히 불규칙해져서 많이 먹거나 혹은 굶거나 식사 시간에 같이 어울리지 않는다든가 급식의 양이 아주 적다든가 급식 시간을 자꾸 거른다든가 이런 문제들을 좀 더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 가장 최근 조사에서 살을 빼고 있다고 응답한 중고교 여학생은 10명 가운데 4명꼴 중고교 여학생 절반은 '다이어트 중'인 현실이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다이어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청소년 섭식장애 일부의 문제라고 외면하고 있는 동안 마름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혜영 / 섭식장애 극복 중 "대체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지, 뚱뚱하지, 이렇게 자책을 많이 하게 되는 병인 것 같은데 그렇게 아프게 된 게 본인의 탓이 아니라고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 EBS 뉴스 진태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