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계시록6장 [EZRA말씀학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6장 1절~17절 1.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 ① (1절)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 5장에서 살펴 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은 심판의 책이다. (겔 2: 9~10, 슥 5:1~3, 단 12:4) 6장은 그 책을 봉인했던 일곱 인이 어린 양에 의해 하나씩 떼어지면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시작되는 광경이다. 예수께서 이미 예고하신 날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눅 21:22).” 6장의 말미에 기록된 말씀이 이를 확증한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큰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6~17).” 본문은 모든 인생이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듯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이 세상도 영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대를 피할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마침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때이자 동시에 믿음의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때다. ② (2절)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는 누구인가?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 네 생물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최종적으로 집행하는 영적 존재다. 스가랴 1장에 기록된 ‘홍마와 자마와 백마’다.(슥 1:13). 스가랴 6장에 기록된 네 병거(홍마들, 흑마들, 백마들, 어룽진 말들)중에 하나다(슥 6:4~5). 천군 천사가 구원과 기적의 역할뿐만 아니라 심판과 재앙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심판과 재앙의 목적은 징계와 회개를 통한 구원이다. 특별히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는 심판과 더불어 구원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곱 인의 재앙을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대비시켜 볼 때, 재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멸망이 아닌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는 회복에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 네 명의 말을 탄 기사 ① (3절~4절)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 난해한 본문을 이해하는데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계시록의 네 기사’에 관한 해석이 유용하다. 흰 말을 타고 적을 무찌르며 나가는 기사는 온역(전염병)을, 붉은 말을 타고 서로 죽이도록 만드는 기사는 전쟁을, 검은 말을 타고 저울을 타고 온 기사는 기근을 상징하며, 청홍색 말을 타고 온 기사는 죽음을 상징한다. ‘전염병, 전쟁, 기근, 죽음’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징계하시는 방법으로 성경에 자주 언급된다. 그런 맥락에서 첫째 인의 ‘흰 말을 탄 자’는 전염병이고, 둘째 인의 ‘붉은 말을 탄 자’는 전쟁이다. ‘큰 칼’은 세계 대전과 같은 큰 전쟁을 의미한다. 말을 탄 네 기사들은 네 생물의 ‘지시 하에 허락을 받아’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심판의 권세를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재앙만을 바라보며 두려워해선 안 되고 재앙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통찰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 (5절~6절)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되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 셋째 인의 검은 말을 탄 기사는 ‘기근’, 곧 극심한 경제 위기를 상징한다. 전염병과 전쟁에서 기근으로 이어진다. 이는 오늘날 코로나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 경제 위기라는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울’은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의 ‘데겔’에 해당된다. ‘저울에 달아보았다’는 뜻이다.(단 5:25), ‘네 생물 사이로 나는 듯 하는 음성’은 재앙을 주관하시는 자의 음성이다. 여기에 요한계시록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의 품삯에 해당된다. 한 데나리온으로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경제 위기를 의미한다. 감람유는 올리브기름인데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포도주는 전통적으로 기쁨을 상징하는 은유다. 이는 극심한 경제 위기의 재난 속에서도 은혜의 감람유와 기쁨의 포도주는 남겨두시겠다는,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총을 증거 한다. 감염병과 전쟁,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 전대미문의 재난을 통과하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언약이다. ③ (7절~8절)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나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 넷째 인의 청황색 말을 탄 기사는 사망, 곧 죽음과 음부다. ‘검과 흉년과 전염병으로 벌어질 대참사’를 의미한다. 네 기사에게 사분의 일을 죽이는 제한적인 권한만 부여했다 점에 주목해야 한다. 네 가지 재앙이 끝이 아니고 심판과 구원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막 13:7~8).”,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9~11)” 일곱 인의 재앙으로 단 번에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이어지는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삼대칠중재앙으로 심판을 점진적으로 행하시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다. 3. 피할 수 없는 진노의 큰 날 ① (9절~11절) “다섯 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다섯 째 인을 때실 때부터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지면서 심판 속에 담긴 메시지를 증언한다. 일곱 인의 재앙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이다. 그들의 애타는 절규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된다. 심판의 목적은 땅의 거하는 자들로부터 죽임당한 순교자들의 신원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 절규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유보하신다. 이는 땅에 거하며 핍박을 일삼는 악인들에게는 경고이자 동시에 하나님께 속한 박해 받는 의인들에게는 위로의 언약이다. 심판의 날은 세상의 멸망과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날, 의의 최후 승리의 날이다. ② (12절~14절)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 옮기우매” ▶ 여섯 번째 재앙의 큰 지진은 삶의 기반으로 여기던 땅과 영원한 줄로 알았던 해와 달, 별과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천재지변이다. 이에 대해서도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께서도 예고하셨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이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 21:25~26)”,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③ (15절~17절)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자유인)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 하나님의 심판은 왕후장상이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임한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눅 21:35~36)” 인생에서 죽음이 예외 없고 피할 수 없고 숨을 수 없는 것처럼, 패역한 세상을 향한 심판도 하나님의 누구도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고 숨을 곳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종말신앙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진노의 심판이 임하고 끝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돌이켜 회개치 않는 우리의 완악함으로 인한 자멸이다. #강릉예향교회 #김명섭목사 # 요한계시록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