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법 "한국인 원폭 피해자 치료비 지원" / YTN

日 대법 "한국인 원폭 피해자 치료비 지원" / YTN

■ 성락구, 한국 원폭 피해자협회 회장 [앵커] 저희가 오늘 초대한 성락구 씨는 히로시마에 1945년에 그때 현장에 계셨던 분입니다 거기서 직접 피해를 당하셨고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성락구 회장, 만나보겠습니다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본 법원에서 자기들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치료비를 지원하도록 하는 그 결정 들으시고 어떤 심경이셨습니까? [인터뷰] 이것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요, 그 전부터 우리 원폭협회 회원들이 많은 투쟁을 했어요 투쟁을 해서 결국 그 결과에 의해서 이번에 나타난 것인데 결국 일본도 안 해 줄 수는 없고, 우리가 미국을 상대로 해서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고 하니까 일본도 자기 국민들한테는 무제한으로 해 주면서 똑같은 장소에서 피폭을 당한 한국인에게는 이렇게 차별을 두고 거는 국제법상으로도 옳지 못하다, 우리가 이렇게 떠드니까 이게 일본, 자기 국가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와서 늦었지만, 좀 일찍 해 줘야 우리 원폭 피해자들, 많은 분들이 치료를 좀더 받고 아직까지 돌아가신 분들도 안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이게 너무 늦었기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있고 지금은 남은 분들이 겨우 2545명의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앵커] 2545명이 우리나라에 지금 남아 계신 거죠? [인터뷰] 네 [앵커] 선생님은 그때 1945년 당시에 2살이셨고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될 때 그 현장에 계셨고, 그때 상황을 2살 때니까 직접 기억은 못하실 테고 가족들, 부모님한테 들으셨을 텐데 어땠다고 들으셨습니까? [인터뷰] 일본 원폭이 떨어지는 날도 아니고 그 전부터 일본에 미국 비행기가 뜨면 공습경보를 울렸답니다 그날 아침도 공습경보가 울려서 동네마다 방공호가 설치가 다 돼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과 저는 어린 아이니까 안고 방공호를 찾아 들어가고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비행기 소리를 듣지 못해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시다가 결국은 방공호에 못 들어오시고 원폭의 후폭풍으로 인해서 일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친은 조국에 돌아오자마자 한 2년간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앵커] 저희가 듣기로는 귀국선, 그러니까 원폭 투하되고 얼마 안 돼서 귀국 (중략) ▶ 기사 원문 : ▶ 제보 안내 : 모바일앱, 8585@ytn co kr, #2424 ▣ YTN 유튜브 채널 구독 :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