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빈둥 전투 -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 해병대 / The Real Story of the Battle of Tra Binh Dong, 이호근방송/LEE'S STUDIO

짜빈둥 전투 -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 해병대 / The Real Story of the Battle of Tra Binh Dong, 이호근방송/LEE'S STUDIO

짜빈동 전투 해병 제2여단 3대대 11중대(중대장 정경진 대위)의 『짜빈동 전투』는 1967.2.14.~15. 야간에 실시되었다. 이 짜빈동 전투는 꽝나이성 추라이에 있는 작은 마을 짜빈동에서 월맹군·베트콩 등 1개 연대의 집중공격을 받았으나 정경진 대위(중대장)를 중심으로 중대원이 똘똘 뭉처 중대전술 기지 내로 적을 최대한 끌어들여 역사에 길이 빛나는 방어전투의 승리를 했다. 11중대기지에는 3개 소총소대 및 화기소대 그리고 여단의 4.2인치 박격포 소대 및 106mm 무반 동총 1개 분대, 3대대에서 지원 나온 81mm 박격포 1개 반등 총 294명이 전투에 임했다. • 월맹군들은 불과 1달 전(1967.1.5)에 짜빈동 인근에 있는 짜빈박 전투에서 2여단에게 피해를 많이 준 승리를 자축하며 재차 공격준비를 했다. 반대로 11중대장은 중대전술기지 방어개념에 따라 자연장애물과 연계된 개인호를 유개화로 보강하며 교통호 등 철저한 진지 구축과 지원 나온 각종 화기는 적의 주요접근로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했다. 기지 외곽에는 2중 단선 철조망, 내부에도 5중 원형 철조망을 설치하고, 적들의 예상접근로 상에 지뢰 140발, 크레모아 63발 및 조명지뢰 등을 매설하는 등 철저하게 방어준비를 했다. 11중대기지에는 3개 소총소대 및 화기소대 그리고 여단의 4.2인치 박격포 소대 및 106mm 무반 동총 1개 분대, 3대대에서 지원 나온 81mm 박격포 1개 반등 총 294명이 전투에 임했다. • 월맹군들은 불과 1달 전(1967.1.5)에 짜빈동 인근에 있는 짜빈박 전투에서 2여단에게 피해를 많이 준 승리를 자축하며 재차 공격준비를 했다. 반대로 11중대장은 중대전술기지 방어개념에 따라 자연장애물과 연계된 개인호를 유개화로 보강하며 교통호 등 철저한 진지 구축과 지원 나온 각종 화기는 적의 주요접근로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했다. 기지 외곽에는 2중 단선 철조망, 내부에도 5중 원형 철조망을 설치하고, 적들의 예상접근로 상에 지뢰 140발, 크레모아 63발 및 조명지뢰 등을 매설하는 등 철저하게 방어준비를 했다. 작전경과 ▶2월 14일 밤, 음산하게 초승달이 떴으나 22:00경에는 안개와 가랑비가 내려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23:20 분경 3소대 청음조가 적이 접근하는 소리를 감지했다는 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즉시 전투준비를 지시했다. •적의 제1접근로 상에 위치한 3소대의 전방에서 적들은 파괴통으로 외곽철조망을 폭파시키자, 중대장은 즉시 81㎜ 박격포탄을 띄워 집중사격으로 적 1개 소대를 격퇴했다. 이어서 2차 공격에 대비하여 경계를 더욱 강화하며, 상급부대의 지원 화력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점검하는 등 취약점을 보강했다. 그러던 중, 포병 관측장교 김세창 중위는 냇가 낮은 둔덕들이 많은 지역에 적이 은폐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어 2여단 포대의 효력사를 요청하여 집중 포격을 했다.  다행히 바로 그곳은 적의 선봉대대가 공격 준비하고 있었기에 아군 집중포격으로 완전히 와해(瓦解)되었다. 덕분에 총공격 하려는 적의 공격 기세는 둔화(化)되었다. •다시 새벽 04시 10분경 3소대 청음조가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중대장에게 보고하였다. 중대장은 즉시 전 병력을 진지 배치한 후 자신의 사격 통제에 따라 적을 최대한 끌어들여 기습사격을 가하도 지시했다. 수많은 적은 철조망 지대를 통과하여 인해전술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대장은 이때다 하고 '사격개시'지시를 했다. 적들은 쓰러진 동료시체를 밟으면서 계속 진격하여 3소대는 돌파 당하였지만, 백병전(白兵戰)으로 피아간에 난투극은 계속 이어졌다. 한편, 1소대 지역도 적은 철조망을 파괴하고 아군 진지로 돌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소대는 크레모아를 집중적으로 격발하여 적은 모두 섬멸되었다. 또한 중대장은 적이 RPG-2(대전차 로켓포)로 공격하려는 의도를 포착하고 4명의 특공조를 편성하여 적을 향하여 역공격을 실시하여 사살시키고 RPG-2 (대전차로켓포)를 노획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적의 포병 화력도 아군 진지에 500여 발의 낙하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아군 4.2인치 박격포를 적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주요 부품을 숨기며 포진지를 보호했다. 교통호는 피아간의 백병전으로 피바다가 되었다. 한편, 2여단 본부는 11중대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판단하고 진내사격까지 진지하게 검토도 했다. 15일 06:30분경, 월맹군의 공격 기세가 한풀 꺾였다. 중대장은 1, 2소대에서 1개 분대씩을 차출하여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기지 내에 침투한 잔적(敵)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각개격파로 모두 격멸했다. 일부 적은 북서쪽으로 도주를 하였으나, 3대대장은 인접 중대에 지시하여 Hel기 공중기동으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여 07:20분경 완전히 섬멸하였다. 작전결과 •확인된 전과(戰果)는 월맹군 1연대 90대대장을 포함하여 사살 243명 포로 2명 그 외 많은 적은 아군포격으로 인해 사망 또는 부상한 것으로 추정했다. 노획 무기는 RPG-2(대전차로켓포) 6문과 화염방사기 3문, 기관총 2정과 다수의 AK소총, 실탄 6,000발을 노획하여 대한민국 해병대의 또 다른 신화를 남기게 되었다. •짜빈동 전투 전승의 요인은 맹호사단 9중대의 두코 전투』에서 확인된 중대전술기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셈이다. 한편, 북베트남 하노이에서 이 전투를 보고받은 '호찌민'은 "한국군을 만나면 일단 후퇴하고 인민의 재산과 병력을 보호하며, 100% 승리할 자신이 없으면 한국군과 싸우지말라"는 지시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결전이 끝난 후, 11중대장 정경진 대위와 신원배 소위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고, 배장준 하사 등 2명에게 을지무공훈장, 김세창 중위 등 8명에게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특히 간부를 제외한 사병 191명은 명예롭게 전원 1계급 특진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 아군 전사자 하사 강경희 등 12명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특히,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국군의 용맹성을 상급기관에 보고한 미 해병대원 2명(무전병, 짐 포르타 일병과 데이브 롱 일병)에게 대한민국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전투가 끝나고 세계유력 언론기자들은 경쟁하듯 톱기사로 한국군의 위상과 용맹성을 격찬하는 기사를 타전했다 제작후원 안내: 기업은행 040-107107-01-018 이호근 문의:: 이호근 010-4094-3558 블로그: https://blog.naver.com/lasolar 페이스븍   / lasolar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