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순성길 백악구간 (창의문 백악산 숙정문 혜화문)
한양도성 순성길 백악구간 (20240330) 구간: 창의문 ~ 혜화문, 거리: 4 7km, 소요시간: 약 3시간 (도보) 창의문에서 백악을 넘어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백악(북악산, 342m)은 옛 서울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높다 공극산(拱極山), 면악(面岳)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세가 ‘반쯤 핀 모란꽃’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다 한양도성은 백악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 창의문-창의문 안내소(폐쇄)-백악 돌고래 쉼터-백악 쉼터-백악마루-1·21 사태 소나무-청운대-암문-백악 곡성-백악 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 안내소(폐쇄) 우수조망명소-와룡공원-암문-서울과학고등학교-경신고등학교-혜성교회-두산빌라-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공관)-혜화문 진입지점교통안내 ㆍ경복궁역(3호선) 3번 출구 → 지선(초록)버스 7212, 1020, 7022번 버스(자하문고개 윤동주시인의언덕) → 도보 2분 → 창의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지선버스 7212번·1020번·7022번을 타고 자하문 고개 윤동주시인의언덕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 2분이면 창의문에 도착한다 창의문(彰義門) 창의문(彰義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양주군과 의주군으로 향하던 관문으로, 근처 계곡의 이름을 따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북소문(北小門)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이다 창의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현재의 문은 1741년에 세운 것으로,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015년 12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었다 왕들이 경복궁에 들어갈 때 쓰는 문이다 어느 한 승려가 선조에게 이 문을 열고 사람들이 마구 왕래하면 이 나라가 망한다고 하자 창의문을 폐쇄해버렸다 그러나 이후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문을 여는 게 아니라 아예 박살내고 도성에 들어왔고 이를 빌미로 후에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백악산(白岳山) 북악산(北岳山)은 서울의 경복궁 북쪽에 있는 산으로,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인왕산, 낙산, 남산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높이는 약 342m이다 경복궁의 진산(鎭山)으로 서울 한양도성의 기점이기도 하다 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는 숙정문, 서쪽 산 기슭에는 창의문이 있으며, 남동쪽 기슭에는 삼청 공원이 있다 한양의 북쪽 산이므로 북악산이라 하였다 달리 백악(白岳), 면악(面嶽), 북산(北山), 공극봉(拱極峯) 등으로도 불렀다 조선 시대에는 북악산의 형태가 오행 중 불에 해당한다 하여 화재를 막기 위한 풍수적인 대책을 하였는데, 그 중에는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우거나 숭례문 밖에 연못을 판 것 등이 있다 숙정문(肅靖門) 숙정문(肅靖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북쪽의 대문이다 북대문(北大門)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근정전동쪽)에 있다 숙정문은 음양오행상 水, 智를 상징하는 북대문으로서, 1396년(태조 5년)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그러나, 풍수지리설에 의해 북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淫氣)가 침범하여 서울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고 하고, 실제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하기도 한 바, 다른 한양도성 문과는 달리 실질적인 성문의 기능은 하지 못하다 1413년 폐쇄되었다 대신 숙정문에서 약간 서북쪽으로 위치한 창의문(彰義門) 인근, 오늘날의 상명대학교 인접한 지역에 홍지문(弘智門)을 내어 그쪽을 통해 다니게 하고, 실질적인 북대문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원칙적으로 위치상·명목상의 북대문은 숙정문(肅靖門)이나, 오행상·기능적인 북대문은 홍지문(弘智門)으로 여기기도 한다 혜화문(惠化門) 혜화문(惠化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동쪽의 소문이다 숙정문을 대신하여 한양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다 동소문(東小門)이라는 속칭이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1592년 문루가 불타 1744년에 재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고 1994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