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앵두나무 처녀 (1956)

주현미 - 앵두나무 처녀 (1956)

노래 이야기 1955년에 만들어지고 1956년 발표된 '앵두나무 처녀'는 '닐리리 맘보'로 유명한 김정애 선생님의 최대 히트곡입니다. 6.25전쟁이 끝난 이후 암울했던 사회상을 재미있는 가사속에 담아내어 큰 사랑을 받은 노래인데요. 안정되는 듯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먹고 살기 힘들었던 농촌을 떠나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던 시골 젊은이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고 없이 서울로 떠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했는데요. 처녀 총각들을 노린 사기꾼들도 극성이어서 쌈짓돈을 날리거나 여자의 경우에는 화류계로 흘러들어가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석유 등잔 사랑방에 동네 총각 맥풀렸네 올 가을 풍년가에 장가들라 하였건만 신부감이 서울로 도망갔데니 복돌이도 삼룡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서울이란 요술쟁이 찾아갈 곳 못되더라 새빨간 그 입술에 웃음 파는 에레나야 헛고생을 말고서 고향에 가자 달래주는 복돌이에 이쁜이는 울었네" 얼핏 보면 가볍고 장난기섞인 가사인 듯 하지만, 천천히 가사를 곱씹어보면 참 슬픈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을 길어오던 처녀, 밭을 매던 처녀들이 무슨 영문인지 말로만 들었던 서울로 짐을 싸서 떠납니다. 어느 날 동네 처녀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총각들은 맥이 풀려 한숨만 쉬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장가를 가야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되는 듯 보입니다. 결국 사라진 신붓감들을 찾아서 동네 총각들은 서울로 향하게 되지요.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요? 천신만고 끝에 이쁜이를 찾아낸 복돌이는 그녀가 에레나라는 이름을 달고 술집 작부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헛고생은 그만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자고 권유합니다. 결국 둘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시골로 내려간다는 이야기입니다. 1930~40년대에 태어난 우리 부모님 세대라면 많이 공감할 만한 내용입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전후 한국경제의 성장에 가장 큰 수고와 기여를 한 세대이지만 그 이면에 존재했던 상처와 부작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노래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은 1960년대에 들어 더욱 심화되었고 서울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1910년 27만명에 불과했던 서울의 인구는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1935년 두 배에 가까운 40만이 되었고 1936년에는 시영역을 확장시키면서 72만에 달하게 됩니다. 1940년 이후에는 인구 100만을 넘는 대도시로 성장하였고, 1963년에 이르러서는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서울시의 형태가 갖춰지면서 인구 300만을 넘게 되지요. 1960년대 초까지만해도 지금의 강남 일대는 경기도에 속해 있었고, 대부분 논, 밭이었습니다. 경기도 광주군, 시흥군의 일부 지역을 서울에 편입시켜 지금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치뤄지던 1988년에는 1000만이라는 숫자를 넘기면서 한국 사람 네명 중 한 명은 서울에 살고 있는 셈이 되었지요. 이러한 인구 심화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인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주현미TV를 통해 먼저 소개해드린 '울산 큰 애기'의 가사를 통해서도 1960년대 서울로 모여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닐리리 맘보'의 노래 이야기를 통해서도 언급한 바 있듯, 대구의 공군비행장에서 전화 교환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정애 선생님은 어느 날 부대안에서 개최된 KBS 노래자랑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계기로 가요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의 정서를 반영하듯, '닐리리 맘보'와 '앵두나무 처녀' 모두 밝고 흥겨운 리듬으로 막막하고 암울했던 시대의 분위기를 위로하는 청량제와 같은 노래들이었습니다. 굳이 1950년대까지 돌아가지 않더라도 물동이를 진 아낙네의 모습은 매우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지요. 급변하던 사회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의 땀과 눈물을 떠올리며 오늘 '앵두나무 처녀'를 함께 불러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