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19 - 29절 (35)
로마서 9:19-29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리라 - (롬 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롬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롬 9: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롬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롬 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 - 바울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마땅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 하나님의 선택의 비밀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지만, 구원의 기회는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 - 하나님의 주권 토기장이와 그릇(19-24)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라고 책망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대답할 책임이 없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토기장이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렘 18:1-6).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이같이 만들었느냐 따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민족과 지도자들은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파괴될 때까지 인내로 참고 기다리시는 진노의 그릇이라 하시고(창 15:16), 다른 하나는 영광을 드러낼 자비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악한 이들을 서둘러 제거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영광을 부요하게 드러내시기 위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관용을 베푸심의 뜻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선민 이스라엘의 선택은 별다른 조건이 붙어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긍휼과 은혜로 되어진 자비의 그릇입니다. 이스라엘의 선택이 그러하듯이 영적 이스라엘 된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긍휼의 그릇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들로 삼으시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내 백성이라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라고 했습니다. - 이방인의 택함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25-26)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선지자 호세아가 증거한 예언의 말을 인용합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사랑한 자라고 일컬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호 2:23). 이 예언은 초대 교회에서 이방인의 부르심을 위하여 자주 사용된 말씀입니다(벧전 2:10).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닌 곳에서, 하나님의 발등상인 시온의 제단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복음의 시대가 펼쳐진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소개 합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라고 한 말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들을 거룩한 씨, 그루터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악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거룩한 씨 7천을 남겨두신 것과 같이 유대인들 가운데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남은 자의 사상은 11장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조적인 상황은 현재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로 나눠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은 바울이 앞에서 말한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바울이 앞에서부터 계속해서 증명하려던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나 공로, 출생 신분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주권적인 선택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2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상에서 선택하여 부르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이방에 전할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들의 전유물로 삼고 이방인들은 제외시켰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데에 앞장을 섰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세계에서 주를 부르는 자들이 벌 떼 같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찬양케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