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 "창세기 38장 2, 12절"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 꼭두새벽묵상 No 803 [창세기 38:2,1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노가다를 하다가 안 하니 온 만신이 다 쑤시고 아프고 다시 무릎관절까지 목도 아프고 어린시절 불렀던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 모두가 불편하다 어디 편한 구석이 하나도 없이 그렇다고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약가이 기분 나쁠 정도로 불편하다 여기서 기분 나쁠 정도란 이렇게 살살 불편하다 나중에 아픈 건 아닌가 ? 이렇게 점점 확대해석 하게 되는 것 그걸 나는 기분 나쁠 정도라 말한다 로마서 12:3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하는데 인생사에는 매번 이 선을 넘는게 다반사인 것 같다 이것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두 종류 하라와 하지 말라 로마서 12장 3절의 말씀에서 ‘하라’는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지말라’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신앙의 여정이 인생의 여정이 늘 하라와 하지 말라 사이에서 뭘 해야 할지, 뭘 하지 말아야 할지 이 선을 잘 구분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말라고 한 건데 요게 먹지 말아야 할 것과 먹어야 할 것을 구분을 못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즐겨 부르던 찬송의 가사가 틀림이 없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는 것 정말 신앙의 여정에 꼭 필요한 자세임에 틀림이 없다 또 기도하고 깨어 있다는 것은 곧 주님의 음성을 매번 듣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음성에 순종한다느 것이 된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는 내가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봐라 말씀을 봐야 사람이 지혜로워 지는 것이다 지금 내 머리안에 들어 있는 성경구절은 내가 청년 때 한 참 은혜 받을 때 입력된 구절들이다 청년회 시절에 혼자 성경읽고 청년회실 시장의자 두 개 서로 마주보게 해서 담요하나 깔고 담요하나 덮고 그렇게 잠을 자고 새벽기도했던 그 시절 교회장의자는 나의 가장 좋은 영적인 침대였다 또 야간 경비를 보시는 집사님께 본당 샷터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들어가고는 이제 집사님 밖에서 문을 잠궈 달라고 해서 본당에 들어가 혼자 밤을 지새웠던 그런 은혜가 지금의 나를 오게 한 것이다 맞다 나 자신을 지키려는 신앙의 열정들이 오늘 나는 봉화산골에 살고 여기서 작은 외침을 하고 있지만 인터넷망이 들어가는 전 세계에서 이 외침을 듣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몇 명이 듣고’ 이것 보다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내 삶의 이야기가 감동을 흘려 줄 수 있고 도전을 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대 만족이다 방송을 통해 100만원 화재성금이 이게 미국에 계신 목사님의 마음속에 메꾸어 주시는 마음으로 자라나 내게로 다시 흘러 들어왔다 이게 곧 또 골절로 꼼작도 못하고 누워 계신 선교사님의 창고로 흘러가게 하신다 이 백만원의 역사가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떠한 결과를 나을지 나는 기대가 된다 평양 대 부흥운동의 시작이 선교사 한 분의 회개로 인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열려진 것이다 CTS방송 선교의 힘이 참 크다 지난 9일에 시작된 겸손은 힘들다 라는 김어준씨의 유투브 방송이 하루에 백만이 넘는 200만이 넘는 조회가 일어나고 실시간 20만명이 그 방송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방송을 본 사람이 나라 살리고 생명 살리고 하느냐? 그게 아니다 그분도 자기 딴에는 바른 뉴스를 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는 바른 뉴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는 뉴스가 살아나는 뉴스가 필요한 것이다 그게 바로 복음인 것이다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목적지를 가는 것도 빠른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켜놓고 가는 동안에 안전하게 목적지 까지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네비를 켜놓고 길을 가는 동안에 빨리 갈 수 있는 것만 생각하지,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만 생각하기에 급급하지 조금 늦어도 이 길이 안전한 길인가? 이게 사는 길 맞는지에는 거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창세기를 들여다 보면 36장과 38장의 이야기들은 없었어야 하는, 기록이 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19장에서 롯이 정혼한 자기 두딸을 내어주면 너들 마음대로 하라고 했던 그런 이야기들은 기록되지 말았어야 한다 그게 성경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한 인간의 수치 스러운 모습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나는 유투브를 하면서 내가 생각해서 못적었다고 생각하는 글과 못했다고 생각되는 방송은 비공개로 하던지 아니면 올리지 않게 된다 그런데 성경은 주인공의 숨고 싶은 것도 비공개로 하고 싶은 것도 아주 적나라 하게 까발리고 있다 이 때 필요한 멘트는 ‘그래서 성경이다’, ‘그러니까 성경이다’ 인간의 수치를 부끄러운 것을 가려주는 가죽옷을 지어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어떨 때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완전히 벌겨 벗겨버리시는 하나님일 때도 있다 오늘 유다의 이야기 그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는 정말 믿음이 없으면 가죽옷 지으시던 하나님이 옷을 벗겨도 이렇게 벚기실 수 있을 까 싶을 정도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징계를 하실 때는 아주 철저한 모습으로 체벌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 내지 정의의 하나님이라 일컫는다 축복의 아이콘 야곱이의 넷째 아들 유다의 인생사 그것도 너무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이 38장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38장속에 흐르는 전개되는 이야기의 중요 관전포인트를 2절과 12절의 두 말씀으로 말하고 싶다 두 구절 공히 나오는 말이 인물의 이름이다 뭐? ‘수아’ 2절에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 12절에 얼마 후에 수아의 딸이 죽은 지라 수아라 하는 사람은 이방 사람이다 그럼 그 딸 또한 이방여인이다 할아버지이삭께서 이방 여인 중에서 엄마를 찾지 말고 외삼촌 집에서 어머니 되실 분을 만나라고 아버지 야곱에게 말했는데 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씀을 따라 결혼하였는데 부자가 삼대를 못간다는 말이 요즘은 바뀌어 교인도 삼대를 못가는 거예요 성경의 교훈은 자녀손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고 하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은 3대를 못가는 거예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수아의 딸을 보니 이게 너무 마음을 혹 뺏아 가는 것이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사람이 원죄를 짓는 과정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에 핵심이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이다 오늘 38장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3장에서 타락의 원인은 아내의 말을 듣고 이다 38장에서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그렇다 세상에 보암직과 먹음직 스러움 탐스러움 이게 사람의 신앙을 갉아 먹는 것이다 유다는 수아의 딸과 결혼하여 엘 오난 셀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장자의 가정사가 순탄치 않다 7절에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장자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던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성경 본문에는 나와 있지는 않아 잘 모른다 하지만 둘째 오난도 죽게되는데 그 둘째의 죽음에는 9절에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하매 피임을 위해 고의적으로 체외 사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10절에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졸지에 아들 둘이 죽고 나니 막내 아들 셀라는 며느리 다말에게 못 주는것이예요 그래서 하는 말이 너는 수절하고 네 아버지집에 가있거라 그리고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고 (11절) 그런데 문제는 12절이다 아내 수아의 딸이 죽자 이 유다가 여인이 생각나는 것이예요 그래서 16절에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고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15절에 창녀로 여겨 며느리가 막내도련님이 장성해도 자기에게 보내주지 않자 14절 그가(유다의 며느리)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시아버지를 유혹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 가나안 사람의 딸을 만난 이야기 전부 다 삭제 하고 싶다, 요런거 설교하고 싶지 않는 내용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낳은 베레스와 세라 이 쌍태중(27절) 베레스를 통해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조상이 되게 하는 그런 놀라운 비밀이 담겨져 있다 가나안 사람의 딸을 보고 마음이 훅하여 넘어간 유다이었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유다의 실수를, 그의 넘어짐을 묻어 버리고 예수님을 그의 후손을 통해서 보게 하시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실을 주야 기억마시고 바른 길로 인도 하소서” 이 찬송이 맞는 말이다 오늘도 우리의 인생길은 빠른 길도 아니고 좋은 길도 아니고 넓은 길도 아니고 바른길 이어야 한다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오늘도 동기 부여를 받고 도전을 받고 보여주신 대로 들려 주신대로 순종하며 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