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자훈련학교02/ 예배의 본질2 (요4장 22~23절,롬12장1절) 박준호목사/하나님 중심의 예배, 사람 중심의 예배, 예배의 원리, 두 기둥(날개), 영적 예배(합리적인 예배)
서 론 저는 오늘 우리 청년들과 중고등부 학생들과 지난 주에 이어서 본질적인 이야기를 더 나누려고 해요. 지난 주 예배의 본질을 나눴어요. “예배의 본질은 예배의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고, 진짜를 알아야 가짜가 뭔지 알 수 있어요. 본 론 1. 사람 중심의 예배와 하나님 중심의 예배 첫 번째, 사람 중심의 예배와 하나님 중심의 예배입니다. 1) 사람 중심의 예배 : 사람(내)의 방식 [ 대상 13:1-4 ]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첫째, 사람 중심의 예배입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면, 다윗이 정말 정말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놓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여호와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거든요. 그런데 그 법궤가 사울 왕 때 블레셋 전쟁에서 지고 빼앗겼다가 지금 멀리 떨어져 있었거든요. 다윗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이어서 “다시 법궤를 모셔 오자.” 이런 의견을 장군들과 지휘관들과 나눴더니 다 좋아하는거에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말 좋은 의도이고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새 수레에 하나님의 궤를 싣고 사람의 눈에 좋게 보이는 방법으로 모셔 옵니다(대상 13:5-8). 그런데 이때 일이 벌어지죠. 기돈의 타작마당에서 수레를 끌던 소가 뛰는 거에요. 그러니 법궤가 어떻게 되요? 뒤로 떨어지려 하겠죠. 옆에 있던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만집니다. 법궤가 떨어지지 않게 잡았던 웃사가 몸이 찢겨서 죽어요. 순식간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며 두려워하죠. 이 소식이 다윗에게도 들어가죠. 다윗도 너무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궤를 가져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둡니다(대상13:9-14). 뭐가 문제였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고, 다윗도 하나님을 갈망하고 너무 사랑하는 마음과 좋은 의도로 행한 일인데, 굳이 하나님이 그렇게 사람을 찢어죽어야 했나요? 굳이 그렇게까지 진노하셔야 됐나요? 이것이 우리 생각, 인본주의적인 인간중심의 생각이죠. 이것이 바로 사람 중심의 예배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역대상 15장에 그 이유와 실마리가 나옵니다. 2) 하나님 중심의 예배 : 하나님(성경)의 방식 [ 대상 15:1-2 ]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둘째, 하나님 중심의 예배입니다. 다윗이 성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를 레위 사람이 어깨에 메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고 성경의 기준인거요.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방식이나 성경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한거죠. 이해가 되시죠? 이제 다윗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레위 자손의 어깨에 법궤를 메도록 해서 온 예루살렘 도시가 떠날 듯이 찬양하며 기뻐하며 다윗 성으로 모셔오게 합니다. 그때 다윗의 모습을 보실래요? [ 대상 15:29 ]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한 나라의 왕이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고 기뻐하며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도 다윗은 기쁨으로 반응해요. 하나님 중심의 예배인 성경의 방식은 본질입니다. 예배는 정확한 기준과 우선순위가 있어요. 다윗은 구약인데도 다윗의 장막이라는 신약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핵심적인 결론은 사람 중심적이고, 나 중심적인 예배를 드리면 안된다. 하나님 중심적이고, 성경의 방식대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중에 한 가지 예배의 원리를 요한복음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에서 찾아서 나누도록 하죠. 2. 예배의 원리 : 예배의 두 기둥(날개) [ 요 4:23-24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두 번째, 예배의 원리, 예배의 두 기둥(날개)입니다. 예배의 원리는 비행기를 생각하면 되요. 비행기가 날기 위해서는 두 날개가 있어야 되죠.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려갑니다. 추진력이 붙으면서 부력으로 하늘을 향해 날죠.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믿음이라는 추진력이 중력을 이기고 하늘을 향하게 하죠. 그때 반드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날개죠. 성경에 그 날개가 바로 영과 진리입니다. 왜요? 영은"프뉴마 : 바람, 호흡, 생명, 영, 성령" 성령 하나님의 임재, 운행하심을 상징해요. 진리는(알레데이아) 말씀을 말합니다. 예배 가운데 두 가지가 반드시 두 기둥처럼 팍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되요.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진다는 것은 성령의 임재와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세요. 영적인 존재이니 육적인 상태와 혼적인 상태로 예배를 드려서는 그분을 만날 수도 없고, 교제할 수도 없는 겁니다. 우리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 길을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열어놓으셨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죠. 예전 시골에 가면 펌프가 있어요. 물 한 바가지를 부어서 물이 속으로 들어갈 때, 손잡이를 위아래로 펌프질하면, 삼투압 현상으로 밑에 지하수가 팍 쳐서 올라오는 겁니다. 계속해서요. 예배는 나의 믿음으로 한걸음 주님께 나아가며 사용해요. 그러면 하나님께 그 믿음을 보시고 믿음을 더 부어주십니다. 참된 예배로 생수가 터져 나오는 깊은 임재 안으로 이끌어가시는 겁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마중물이라는 나의 믿음의 고백, 바라봄의 찬양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3. 영적 예배 : 예배가 예배되는 합당한 예배 세 번째, 영적 예배, 예배가 예배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럼 예배가 예배가 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예배가 뭐냐? 예배가 예배가 되려면 어떻게 드려지는 것이 예배가 드려졌다고 말하는 것이냐! 성경에서 말한 것을 찾아보죠. [ 롬 12: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라는 말이 나오죠. 영적 (로기코스) 예배란 “말씀의, 이성적인, 영적인, 합리적인” 예배라는 말이에요. 이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예배다. 앞에 무엇이 합리적인 영적 예배죠? 너희 몸을 1)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2) 거룩한 3)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래요. 자! 세가지에요.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첫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내가 기뻐하고 내가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야 진짜 예배다.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야 진짜 예배다. 내 기분과 필링이 채워지고 즐기는 콘서트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울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의 정서를 터치하는 음악적인 예배 음악이 아니라는 겁니다. 최우선순위! 하나님께서 마음이 들어하시고, 흡족한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죠. 하나님의 기쁨되고 싶은거요. 2) 거룩한 둘째, 거룩한 예배입니다. 주일에 와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예배라는 행위,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 드리는 것이 진짜 예배다. “거룩한”은 구별되어 있는 사람이 드리는 것이 거룩한 진짜 예배입니다. 일주일동안 죄악 가운데 찌들어서 죄의 짱아찌가 된 상태로 교회라는 공간에 와서 예배 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에요. 기만이고 이중인격자이죠. 3) 산 제물 셋째,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Living Sacrifice. 죽은 시체가 드려지는 예배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드려지는 것이 산 제물이며 진짜 예배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삶이 예배로 드려져야 진짜 예배다. 삶이 전혀 없어요.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까지가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인데 “내 마음 알지”라고 하고, 한달이고 일년이고 만나지를 않고, 교제를 나누지도 않아요. 그럼 그 마음은 거짓이라는 증명이죠. 진짜라면, “제가 여기서 불이야!” 진짜 불이 난 것을 알면, 깨닫고 가만히 여기 계실래요? 아니죠. 전인격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당장에 불이 난 것을 인지하고 내 몸을 일으켜서 뛰쳐나가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하나님의 임재를 진짜 믿는다면 그 임재 안으로 뛰쳐들어가야죠. 결론적으로 전인격적인 예배가 합리적인 영적 예배입니다. 결 론 첫 번째, 사람 중심의 예배와 하나님 중심의 예배입니다. 두 번째, 예배의 원리, 예배의 두 기둥(날개)입니다. 세 번째, 영적 예배, 예배가 예배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예배는 점점 깊어지는 겁니다. 느낌이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 스킬이 화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입니다. 방향성입니다. 예배의 원리와 기준에 맞추는 것이죠. 하나님께 전 존재를 산제물로 드리는 것이죠. 예배의 참된 열매를 맺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세대와 세상 사상과 풍조인 문화에 쓸려가지 않는 예배자가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심을 추구하는 진짜 예배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