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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MBC뉴스]R]유교책판이야기 29편-갈암집 훼손 사건
2017/01/02 08:35:19 작성자 : 보도팀장 시청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교책판이야깁니다. 조선시대는 당파싸움이 심했습니다. 그 당파싸움에서 진쪽은 최소한 유배형을 받거나 죽임까지 당했습니다. 정부인 장씨 장계향선생의 아들인 갈암 이현일도 당파싸움에 휘말려 유배를 당하고 그의 문집은 불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던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집권세력과 척을 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지만 일부 강직한 유학자들은 자신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말을 다했던 것입니다. ============================================ 조선왕조가 무너져가던 1909년에 간행된 이현일의 문집 갈암집 책판입니다. 갈암집 간행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라 100년 전인 1810년에 한 차례 간행됐다가 조정에 의해 불태워졌습니다. 당시 책판을 불태운 것은 물론 관련자는 유배되고 각수까지도 심한 고초를 당했는데 순조 10년 승정원 일기를 보면 이현일의 문집 간행은 역모에 준하는 것이라고 성토하고 있습니다. 이현일의 책판과 문집이 왜 불태워졌을까요? 한마디로 강상죄인綱常罪人으로 역적의 문집이라는 이유입니다. 갈암은 1689년 숙종 15년에 성균관 좨주가 되면서 관직에 진출했는데 퇴계학을 신봉하는 영남학파인 그는 남인을 두둔하고 율곡의 이기론을 비판하면서 노론들과 맞섰습니다. 그런데 숙종 20년, 노론이 집권하면서 문제가 달라진 것입니다. ◀INT▶이상호 박사/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당시에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던 기호학파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율곡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단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앞에서 정치적인 탄압뿐만 아니라 강력한 이론 비판까지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상소 가운데 숙종의 두번째 왕비인 인현왕후를 보호하는 상소를 두고 노론의 공격으로 국문까지 당하고 유배에 처해지게 됐습니다. 갈암 사후 100년이 지난 1810년 후손들이 유림의 공론도 없이 갈암집을 간행하기 위해 책판을 만들었는데 이 사실이 발각돼 불태워진 것입니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갈암집 간행은 역적의 일로 간주됐습니다. ◀INT▶김현수 박사/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장 "이현일의 후손들이 문집을 판각하게 되자 조정에서 그것을 알고 모든 목판을 거두어서 불태우라고 명령하고 이 판각에 참여했던 이광진과 이상채 등 주모자들은 모두 귀양가게 됩니다." ============================================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으로 인한 사상갈등과 탄압은 한마디로 생사를 건 투쟁이었습니다. 유배는 예사이고 죽임까지 당한만큼 사화나 환국에 휩쓸리면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까지 큰 곤욕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정부인 장씨의 아들로 진정한 유학자란 평가를 받았던 갈암 이현일도 당파싸움을 비켜갈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갈암집에는 이러한 사정으로 서문과 발문없이 이현일의 저작만 실려있습니다. 서문과 발문을 써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상이 다르고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도 당이 새로 만들어지고 같은 당에서도 분당까지 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정치인들의 대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유교책판이야기 이호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