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론(3)(4)-홍윤숙

장식론(3)(4)-홍윤숙

장식론(裝飾論)3-홍윤숙 ​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원시의 숲에 사내들을 부르던 여자의 비음 같은 교태가 아니었을까   젖은 목덜미에 반짝이는 목거리 귀밑에 하늘대는 호박의 귀거리 그것들은 모두 나비를 부르는 꽃 속의 밀蜜 꽃가루 같은 유혹의 지분이 아니었을까   거울 속에 어른대는 실바람처럼 내 안에 흔들리는 또 하나의 '나' 풀잎 같은 '나'를 위해 장식은 곱게 물 들이는 가을 볕이다   그래 바람결에 살랑대는 눈짓들처럼 조용한 소녀들의 웃음들처럼 장식은 저마다의 빛깔이며 향을 다투어 사랑의 말들을 대신해 준다   그래 여자들은 남모르는 속의 숨은 사연을 위해 온 시간의 한 번은 서글픈 장식에 기울여 본다 아무래도 오산하는 인생인가 보다   장식론(裝飾論)4-홍윤숙 ​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떨어버릴 때 씻은 그릇처럼 정결해질까   덤불진 넝쿨 잎을 떨구고 후미진 골짜기 빛은 스며도 겨울 나무숲 바람에 떠는가   끈질긴 사슬 엉긴 뿌리 밑 속으로 비쳐 오는 고독의 눈...... 인생의 눈...... 절절히 깊어가는 살 속의 정적   ......장식은 이제 풀밭에 부서진 여름날 완구 사랑도 장식같은 기억 속의 계절   허허로운 寒天한천에 우는가 裸木나목 가지마다 차가운 바람의 곡예   한장 나뭇잎을 마지막 떠는 나무는 渾身혼신의 힘으로 견디는 게다 바람속에 피 흘리는 십자가처럼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떨어가는 것 落木낙목하는 나무의 흐느낌으로 짓푸르던 한 생애의 진한 아픔을 조용한 하강 속에 견디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