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간 38선 돌파 경쟁도…'6·25 그 날의 진실' / YTN

韓·美 간 38선 돌파 경쟁도…'6·25 그 날의 진실' / YTN

■ 원태재, 예비역 육군 준장 /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소련은 북한에 군을 중국보다 먼저 창설하여 남침 준비 스미스 부대, 전투에 패했지만 미국이 북한군을 파악하는 계기 마련 낙동강 방어선까지 축차적 방어가 가능했던 건 병사들의 '애국심' 한국군·미군 간 38선 돌파 경쟁도 벌어져 '유비무환'의 자세로 대비해야 대한민국 국가의 틀이 유지될 수 있어 [앵커] 여러분은 6.25 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정전 상태입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6.25 전쟁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전쟁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국방부 대변인을 지낸 분입니다. 원태재 예비역 육군 대령 그리고 YTN의 김주환 정치안보 전문기자에게 6.25 전쟁, 우리가 몰랐었던 숨겨졌던 비사들 몇 가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6.25 얘기를 다 하자면 하루종일 해도 모자라겠죠. 그러나 우리가 오늘 몇 가지 오늘 짚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두 분께서 지목하신 것 중 하나가 미국과 소련의 1945년 해방 이후에 두 나라의 태도 차이가 그때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를 만들었다라고 짚으셨던데 이건 어떤 얘기인지 어느 분이 설명해 주실까요? [인터뷰]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은 미군사령관이었던 하지 중장은 야전군 출신입니다. 미국에서는 특별하게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죠. 그래서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경찰 예비군 성격으로 치안유지군의 성격으로 국군을 창설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각 도의 일개 연대씩, 이렇게 나중에 부대가 규모가 증편되기는 하지만 상당히 방어 위주의, 전투력이 별로 있지 않은 그런 군대가 됐고요. 북한 같은 경우는 체르크코프 사령관이 야전군 출신입니다. 그런 계획 하에 처음 부터 무력 남침을 위한 공격적으로 양성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북한군 같은 경우에는 중국보다 군대 창설을 먼저 하게 됩니다. [앵커] 그러니까 소련과 북한은 처음 부터 목적이 뚜렷했고 미국은 조금 나이브한, 큰 계획이 없었고. [기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의 입장에서. 2차 대전 이후에 인플레이션도 심하고 미국의 경제도 안 좋아서 군비를 축소해야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 (중략)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01_2015062...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email protected], #2424 ▣ YTN 유튜브 채널 구독 : http://goo.gl/Ytb5SZ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