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시감상] 2024년 호미곶 흑구문학상 시 대상, 박기준의 다음,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노래하다

[당선시감상] 2024년 호미곶 흑구문학상 시 대상, 박기준의 다음,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노래하다

다음 / 박기준 숫자 속에 사람이 있다 투구를 쓰고 욕받이가 되었다 벽 뒤에 숨어 회색 정장 입은 당신을 위해 달리는 경주마 눈으로 보이는 그를 채워야 하고 외면하기 어려운 통장에 찍히는 그가 줄어든다면 납작한 숫자를 높이기 위해 달라지는 나의 페르소나 수치 속에 웃음과 눈물로 굽어진 이야기들이 매몰되어 버리고 끝내 이름을 잃었다 유모 군은 철근 내리는 작업 중 추락 이모 군은 엘리베이터 수리 중 승강로에 끼여 사망 A 군 ㄱ 군 옆에 사고의 언어는 괄호 신문 한 귀퉁이에 낯선 이방인이 스치고 퇴근하지 못하는 숫자는 쌓여 가고 ​실적만으로 서열화되는 세상 부조리가 유언장을 써 내려간다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 외에는 모르고 살아가겠지 낮은 지점에 있는 사람을 갈아 넣는 게 당연해지는,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테러 감각이 없는 폭력들이 쌓여 심장을 잠식하고 나직한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떨어진 꽃잎들 상실은 자국을 남기고 상한 몸들이 계속해서 재생된다 눈빛으로, 허공에 던진 말로 시그널을 보냈다 맨발인 발이 한 짝 밖에 없는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발화되지 않았던 문장의 표피가 날카롭다 어떤 품사로도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 지배하는 숫자의 늪 한 줌의 빛이 필요한 세상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봄은 오는데 ​보고 싶다 다음이 오지 않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