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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정 [2편] - 사하라사막에서 한국UN군을 만나다 ( 1995)
사막에서 만난 한국UN군 -사해동포주의를 실천하는 모리타니아의 한국인 아프리카를 항한 도전 알제시라스 항구에서 배에 올랐다 1시간여를 지난 후 나와 이카루스가 정박한 곳은 세우타항 이제부터 아프리카가 시작된 것이다 랠리팀과의 약간의 동행이 있은 후 모로코의 수도 라밧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았다 아프리카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나를 보며 놀란 눈으로 계속적인 투어를 간곡히 만류했다 대사관에서는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부족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으며 전쟁 그리고 무엇보다 강도 등의 피해가 극심해 생명의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말로 아프리카의 현지 상황을 설명하며 나의 계속적인 투어를 만류하였다 더군다나 혼자서 남아공화국까지 간다는 것은 거의 죽음을 예고한다는 말뿐이었다 중앙아프리카에는 길도 없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약간은 겁이 나기도 했고 주춤하기도 했지만, 여행을 중도에 포기할 수 있는 이유는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계산되어 있는 위험은 아니였지만, 이미 5개월이란 기간동안의 투어로 위험에 대한 이력은 붙을대로 붙어 있다고 자만한 상태였으며 나의 호기심은 도전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다 주서기관은 목숨을 걸면서 이런 무모한 모험을 하는 당신을 이해 할 수 없다며 왠만하면 지금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였다 대사관 서류철에는 우리는 곽군의 오토바이 아프리카 종단을 포기 하도록 설득했고, 끝까지 만류했다고 기록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부모님의 이름과 연락가능한 전화번호를 기록하고 가라는 말도 남겼다 맞았다 대사관 측의 걱정과 염려는 겪은바 사실이었다 모로코 남부 서부 사하라 지역은 polisaria란 원주민 반군과 모로코의 영토 귀속 분쟁이 있었고, 현재도 대치 상황이어서 모르타니로 가는 유일한 길은 해안선 도로(군사용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 도로도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둘째 용케 통과한다 하더라도 모르타니의 험한 국경을 육로로 통과하는 것이 허가되는지도 미지수였다 이 국경도 3년전에는 모로코와 모르타니의 전쟁으로 한때 폐쇄 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사관에서 얻은 한가지 희소식은 놀랄만한 것이 었다 해안선을 따라 한국인들이 곳곳에서 고기잡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UN군의 일원으로 한국군 40명이 P·K·O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Big Happy News 였다 그곳은 바로 LAAYONE 그곳에 파견 나와 있는 사람들은 군의관들이 대다수였고, 따라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기에 안전과 신분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에 상록수 부대가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귀국했다는 사실은 이미 접해 알고 있었으나, 이런 사막 도시에도 한국인이 활동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직접 눈으로 보기전에는 믿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먼 이국땅 그것도 사하라 사막에서 한국군인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뛰고 반가운지 기대감이 먼저 앞섰다 갈길이 멀고 마음이 급하기는 했지만 라밧에서 10일 이상을 지체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비자에 관한 문제였다 유럽대륙에서는 입국허가 라는 번거로운 수고로 부터 자유로웠 으나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거의 모든 나라가 비자를 필요로 한다 모르타니 영사에게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 겠다고 하니 허가가 불가능하다는 것 이었다 polisaria 반군들로 부터의 지뢰가 매설돼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 었다 1990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3 명의 젊은이가 길을 잘 못들어 지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해 3명 모두 즉 사했다는 떠들석했던 기록이 있었다 비자를 받는 유일무일한 길은 비행기 티켓을 구해야만 한다는 것이 대사관 의 공식 입장이었다 뇌물로 적당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갑자기 커다 란 고민에 빠져들었다 모로코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은 알제리로 들어가 사하라 사막을 통해 니제르로 가는 한가지 방법이 있가는 했지만 그러나 이 곳 역시 불가능 했다 현재의 장비로 사막 1,200km를 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 한 가지 위험은 알제리의 회교 원리주의 자들의 무차별 외국인 실인이었다 얼마전만 해도 대우상사 직원 한 명이 죽음을 당한 적이 있는 상벌한 땅이었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들어가 는 알제리 국경도 이미 폐쇄가 돼 있 다는 정보도 있었다 엄청난 비행기 샀을 지불하며 오토바이와 함께 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지금 나의 처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었다 잠시 대사관 대기실에서 고뇌 에 빠져있을 때 스위스에서 온 히치 하이커 2명이 바디랭귀지를 통해서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묘 안을 한가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뜻 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옛말이 하나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기대와 반신반의의 심정을 안고 그들의 말에 귀를쫑긋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