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20회 다산은 왜 정여인 살인사건 판결을 후회했나
얼마전 최순실씨가 특검에 출두하면서 ‘민주특검이 아니다’라 외치자 ‘염병하네’라는 소리가 3번 들렸다 특검 사무실의 환경미화원이었다 환경미화원은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고래고래 큰소리치는 최순실씨를 향해 ‘분노의 외침’을 날렸다 욕설이어서 언론에서는 쓸 수 없는 ‘염병’ 언급은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탈바꿈했다 아닌게아니라 새삼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죄를 저질러놓고도 큰소리치며 수사를 방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때로 답답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으로 붙잡아두고 다그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태평상대, 요순의 시대였던 세종과 중흥기를 이끈 정조 시대의 죄와 벌을 곱씹어보면서 시대의 정의를 한번 돌이켜본다 세종 때는 왜 범죄가 들끓었을까 세종은 왜 사형수의 특별사면을 생각했을까 정조는 왜 그토록 살인사건 수사에 힘을 기울였을까 세종 시대에 넘쳐난 사형수, 그리고 정조 시대의 살인사건 처리법… 이 두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 정의를 생각해본다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경향신문 홈페이지 경향신문 페이스북 경향신문 트위터 스포츠경향 홈페이지 스포츠경향 페이스북 스포츠경향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