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태기산 역사/지리 탐방 산행 (9km, 2시간반) | 날씨가 흐려서 아쉽고 겨울 눈내릴 때 오세용~
#태기산 #양구두미재 #역사지리 # 태기전망대 #태기분교 태기산 역사지리 탐방 힐링산행 9km, 2시간반 [영상요약] 00:27 태기산 Relive 하이라이트 03:04 양구두미재출발 04:38 태기산지리 바람골 05:25 양구두미재 유래 05:58 태기분교의 역사 07:22 태기산 이름 유래 08:24 태기산전망대(정상석) 13:28 태기산풍력발전기 [등산스토리] 어제 평창 백덕산 산행 후 웰리힐리에서 휴식을 한 후 오늘은 봉평에서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고 태기산 등산로입구 중 하나인 양구두미재에 도착했습니다 봉평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생가가 있습니다 봉평은 이효석의 이름으로 먹고 살만큼 봉평읍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양구두미재는 평창군 봉평과 횡성군 둔내의 경계에 있습니다 점심때까지는 날씨가 좋았는데 구름이 몰려들고 있어 비가 내릴 듯합니다 태기산은 풍력발전기와 통신중계소 유지보수를 위해 정상인근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한데 일부도로는 비포장이어서 SUV차량으로 정상인근지역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2020년 7월10일부터 차량통행을 차단해서 오늘은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코스는 양구두미재-태기분교-태기산전망대까지입니다 왕복9km를 2시간반에 다녀오겠습니다 14시15분 양구두미재 14시45분 꽃나무 14시50분 1142봉 15시 태기분교 15시12분 정상아래 삼거리 15시21분~32분 태기산전망대 15시40분 정상아래 삼거리 16시1142봉 태기산 전망언덕 16시27분 산행완료 [태기산 지리] 태기산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에 걸쳐 있으며 정상높이는 1261m 입니다 횡성쪽으로는 높은고도의 평지가 대부분이어서 바람이 세게 부는 바람골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겨울에 눈이 많고 설경이 멋있어 겨울명산입니다 겨울에 풍력발전기 날개의 눈과 얼음이 떨어져 위험할 수 있어 통제가 되기도합니다 태기산정상까지 차로 가능? 태기산은 풍력발전소와 통신중계소의 유지보수를 위해 정상 근처까지 자동차가 통행가능한데 일부 비포장이어서 SUV차량으로 정상인근지역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2020년 7월10일부터 양구두미재에서 진입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정상은 KBS송신소와 군부대가 있어서 출입금지구역이 둘러져 있습니다 태기분교에서 태기산성 송덕사를 거쳐 신대리로 하산가능합니다 여담으로 태기산은 등산, 야영, 촬영, 생태탐방, 데이트, 오토바이, 차박 등 여러 목적으로 많이 찾다보니 주변에 똥이 엄청나게 많으니 주의하라고 합니다 [양구두미재의 전설] 옛날에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이 고개에 아버지의 묘를 썼는데 한참이 지나도 재산이 늘지 않자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는데 땅속에 두마리의 황금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이고개를 양구데미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태기산의 이름/유래] 태기산의 옛이름은 덕고산입니다 진한의 마지막 왕이었던 태기왕(泰岐王)은 군사들과 이 곳 덕고산(德高山)에 들어왔습니다 산성을 쌓고 신라의 박혁거세에 대항을 하였습니다 덕고산에 의지해서 살던 횡성과 평창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깊고 깊은 산중에서 처음 보는 왕과 장군의 행렬과 그들이 갖고 온 선진문화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태기왕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덕고산을 태기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기산에서 발원하는 갑천이라는 하천도 원래는 주천이었으나 태기왕이 박혁거세의 추격을 받아 산으로 들어올 때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하여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되었습니다 [태기분교의 역사 ] 해발 1200고지! 산속 꼭꼭 숨어있는 하늘아래 첫 학교 횡성의 태기산 태기분교 해발 1200고지 숲속에 학교를 세우고 공부를 했다는게 믿기지 않습니다 1960년대 국가정책에 의해 화전민이 많이 이주했는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1965년 당시 스물셋 나이에 태기산에 아이들을 위해 찾아 온 이명순 선생님은 정규학교 설립을 위해 교육청과 도시자를 찾아 다니며 노력했고 향토발전과 아동교육에 관심을 보인 참 멋진 선생님이십니다 그 결과로 1966년 인가를 받아 그 후 개교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까지 6년간 태기분교에서 학생들과 생활하였습니다 태기분교는 1966년 갑천면 봉덕초등학교 분실로 인가를 받아 72명의 학생이 입학식을 가졌습니다 1976년 화전민들의 이주로 안타깝게도 태기분교는 폐교되었습니다 2017년 태기산생태탐방로를 만들고 태기분교 터에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그 당시 학교 생활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신대리코스의 태기왕전설길에는 태기산성터와 태기산성비가 있습니다 [경찰전적비] 양구두미재에는 해방 후 좌우 대립으로 인한 대혼란을 겪고 있을 때 1948년 북한에서 무장공비를 남파시켜 태백산맥 인근 산간지방에 출몰하여 관공서를 습격하고 약탈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당시 공비토벌작전이 개시되면서 둔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활동을 하였고 태기산 일대에 출몰한 공비토벌을 위해 활동하다 전사한 이들을 추모하비 위해 1992년 6월 5일 세워졌습니다 (비문) 우리 민족은 8 15해방으로 나라를 되찾은 기쁘과 감격도 채 가시기전에 38선을 경계로 국토와 민족은 양편으로 갈라져 역사는 또다시 분쟁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1948년 10월 강동정치학원 소속 무장공비 180명을 태백산맥을 이용 남파시켜 그중 일부가 태기산을 중심으로 산간지방에 출몰하여 관공서를 기습하고 양민학살과 약탈행위를 자행하였다 1948년 11월 15일 횡성경찰서 조동하 경위 지휘하에 1개소대는 태기산 일대에서 출몰하는 무장공비 수색전 수행중 장구목, 응봉 등지에서 무장공비와 치열한 전투를 하여 10여명을 사살하고 무기 다수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경감 곽윤춘과 경위 양명석이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1949년 7월24일 치악산에 숨어있던 무장공비가 강림지서를 포위 기습하여 왔을 때는 경위 기무기 지휘로 경찰 5명이 즉시 응사하여 교전 중 2명을 사살하고 모두 격퇴시켰으나 경위 김한석이 전사하였다 이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장렬하게 젊음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살신성인의 경찰정신이 후배 경찰관들에게 귀감이 되게하고 저 격전지였던 태기산 기슭에 전적비를 세우노니 호국의 영령이어서 비록 조국의 산하가 외세에 의하여 갈라졌으나 통일은 기필코 우리 손으로 이루겠으니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