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발췌,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노무현의 국정운영 방식과 국가비전 2030

[책 발췌,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노무현의 국정운영 방식과 국가비전 2030

노무현 대통령은 자유주의자답게 권력의 힘이 아니라, 말과 논리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다 노 대통령은 ‘재래식 살상 무기’를 버리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 가운데 전쟁에 나섰다 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을 모두 청와대에서 독립시켰고, 야당과 보수 세력의 거센 정치공세에 시달리면서도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힘을 사용하는 대신 말을 사용하는 전투에서 대통령이 야당과 보수 언론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에 의존하는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은 정치적 적대 세력의 집중적 타격 목표가 되었고, 그러면서 국민과 정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정서적 토대가 파괴되었다 국민과 직접 대화할 통로가 부족한 가운데 대통령의 모든 말이 거두절미 왜곡되어 보수 세력의 ‘정권 살상용 실탄’으로 재활용되었다 마치 변변한 방어용 무기 없이 전쟁에 나선 지휘관처럼 대통령은 보수 신문과의 ‘전쟁’에서 참패했고, 참여정부는 이로 인한 정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한 가운데 끝이 났다 역량 부족은 사회자유주의 정책 패키지를 마련하여 국민을 설득하고 입법을 해나갈 수 있는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데서도 드러났다 열린우리당은 한때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가졌지만 사회자유주의 노선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견지하려는 세력은 여당 내의 매우 미약한 소수 정파에 지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미국 민주당처럼 보수적 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 세력이 제휴한 연합정당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하락하자 연합정당으로서 열린우리당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제도적 절차적 정치적 원칙이 당내에서부터 모두 무너졌다 그러자 대통령은 몇몇 국정과제위원와 청와대 참모, 일부 장관, 그리고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자유주의적 정책 조합을 만들고 추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부설 정책연구원이 장기 정책 비전을 만들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경제정책에서 국방정책까지 국정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국가비전 2030’이라는 정책 비전을 만들었다 한 정당의 기본 정책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한 정책집이었다 그런데 여당 국회의원이나 정책연구원 실무자들은 이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여당 지도부는 ‘국가비전 2030’을 ‘세금 폭탄’으로 규정한 보수 언론의 보도가 난무하는 상황을 보고 너무나 위축된 나머지 이것을 공식 발표하는 보고회에도 참석하기를 거부해버렸다 결국,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가비전 2030’은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은 이제 국가기록원이 운영하는 ‘제16대 대통령 웹 기록 서비스’ 자료실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다 확고한 정치 세력이 없이는 어떤 정부의 정책 지향도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입증한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