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과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53:1-6)

제84과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53:1-6)

8월 11일 2024년 베이사이드장로교회 순모임 교재 제84과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53:1-6)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에 맞춘 노래)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1. 오늘 본문에서 어리석은 자는 어떤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당신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 1절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어리석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나발’이란 말인데 그 뜻은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다’, ‘지치다’, ‘쇠잔하다’, ‘어리석다’ ‘이치에 맞지 않는 황당한 행동을 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종합해 보면 어리석은 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황당한 행동을 하여 쇠잔하여 가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점점 시들어가는 삶을 사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5장을 보면 이것을 증명하는 자가 나옵니다. 그는 ‘어리석다’는 이름인 나발이란 이름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양과 소를 많이 소유한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윗의 보호로 평안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 근처에 기거하고 있던 다윗은 근방 나라에서 왜적들이 일어나 나발에게 오는 것을 막아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쫓기는 중에 먹을 것이 떨어져 그에게 양식을 구하자 나발은 단칼에 거절하였습니다. “네가 누군데 나에게 양식을 달라고 하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에 진노하여 그를 징벌하고자 할 때 그의 부인인 아비가일이 음식을 풍성히 가져와 중재하므로 나발은 겨우 화를 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일 후 나발은 병을 얻어 죽게 됩니다. 아마도 다윗이 자신을 죽이러 온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병에 걸려 죽은 것 같이 보입니다. 그의 그런 삶은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은혜를 악으로 갚는 어리석은 자로서 쇠잔해 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어리석다고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보아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 18-20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말씀은 모든 만물을 보면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만물이 다 너무도 목적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공중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있다는 것과, 지구에 생명체가 살도록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산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리고 해가 적당한 거리에 떠 있어서 지구에 생명의 빛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로 인하여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져서 육지로 넘쳐 들어오지 않게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구조를 보면 절대로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온몸에 핏줄이 연결되어 있어서 온몸에 필요를 공급하고 있고, 모든 신경이 온몸에 있어서 느끼고 삽니다. 이런 것을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없고 누군가 목적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저절로 만물을 보며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마음대로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떡 먹듯이 백성들을 먹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자신이 행한 죄악을 누구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죄를 함부로 저지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죄악을 두려움 없이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들의 행위를 보고 계시다가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오늘 본문 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이 말씀에서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라는 말은 위험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적들로부터 공격을 피하고자 요새를 지어놓고 거기 숨은 것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곳에서 악인들은 크게 두려워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곳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새 보면 안전한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느끼며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전역에서 계속 총기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코비드 19 같은 전염병이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곳에서도 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기록한 저자는 이런 말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이런 내용을 보면 오늘 본문은 분명히 다윗의 글이지만 누군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서 편집하여 자신의 해석을 첨부하여 기록한 것임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시대에는 포로 생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편집한 이유는 하나님이 구원하실 때가 올 테니 힘을 잃지 말고 살라는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그때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였고 그 나라 백성은 가장 안전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어리석게 악을 행하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고 이스라엘은 자유를 갖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고는 적중하여 바벨론은 곧 페르시아에 의하여 망하고 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는 이스라엘에 자유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도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자에게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