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김현아/죽음을 배우는 시간-자연사는 안락사나 살인과 혼동되기도 한다고 밝힌 30년 현직 의사의 회고록](https://krtube.net/image/gkLb01B4lLE.webp)
29]김현아/죽음을 배우는 시간-자연사는 안락사나 살인과 혼동되기도 한다고 밝힌 30년 현직 의사의 회고록
이번에 책맛보기하는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30년 경력 현직 의사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책은 저자의 회고록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류머티스 내과 전문의인 김현아 저자는 젊은 시절, 노화에 의해 생기는 관절염 완치제 개발의 야심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저자가 2020년 7월,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라는 부제를 단 책을 출간했습니다 병원을 생계도모를 위한 일터로 삼는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의외였습니다 병원의 죽음 비즈니스에 속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함이다 30년을 의사로 살면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 수없이 지켜봤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늙음과 죽음을 치료해야 할 질병처럼 인식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죽음을 덜 준비하게 되었다 건강을 유지하고 목숨을 이어가는 것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은 좋은 삶을 위해 똑같이 중요하다 2020년이 저물어가는 끝자락에서 읽은 책맛보기할 책은 [죽음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사실 모든 죽어가는 자는 죽음 자체보다도 병원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질까봐 그것이 더 무섭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결정을 앞둔 가족들은 공포에 가까운 번민을 겪어야 합니다 이런 딜레마에 놓인 죽는 자와 남는 자 모두를 위해, 즉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파격적인 내용까지 담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환자를 살리는 것도 의사의 책임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환자가 편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의사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칠 수도 있는 죽음의 속성을 잘 압니다 아무리 죽음을 단단히 예비해 둔다고 한들, 그에 안성맞춤인 죽음이 전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죽을 상황에 처해지면 별도리 없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 낭패한 상황을 전제하면서도 죽음을 예비하는 것은, 죽어야 하는 순간이 도래했을 때, 기꺼이 죽음을 껴안는데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줄 것이라는 바람 때문입니다 저의 그 바람이 얼마나 허무맹랑할 가능성이 많은지는 무소유를 주창하신 법정스님의 사례가 대변합니다 옮겨봅니다 75세에 폐암 판정을 받은 법정스님은 미국의 저명한 암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귀국해서 민간요법으로 투병 생활을 계속하다가 78세에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중환자실에 한 달쯤 있다가 길상사로 옮겨 입적했다 3년간의 암투병 과정은 법정스님의 평소 신념과 달랐고 웰다잉과도 거리가 멀었다 삶을 내 마음대로 살아내는 것도 힘겨운데, 죽음을 내 의지로 도모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희망일 수 있습니다 죽음은 남아있는 가족들의 요량에 흔쾌히 맡기는 것이, 죽는 자와 남아있는 가족들과의 이별에 있어, 배려의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한들 과연 죽음이 임박했을 때 준비한 것들이 제대로 발휘될 것인지도 긴가민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작성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죽는 자와 남는 자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기여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별의 순간은 죽는 자와 남는 자들 모두를 이리저리 휘둘리게 합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성을 덜 훼손당하는 데에 보탬이 되고 조금은 덜 헤매도록 하는 조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자의 죽음이라하더라도 병원에서 임종을 직면해야 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이윤 창출과 이익 도모에 이용될 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현장 경험이 많은 저자도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만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병원에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결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 의향서는 그대로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병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죽음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되고 만다 죽음을 앞둔 92세 할아버지가 병원에 가게 되면 환자가 되어 연명하게 된다 현대의학은 죽음의 속도와 시간, 장소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사망에 이르게 될 때까지 병원 측은 전혀 부담 없이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하게 된다 이렇듯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몸에 수십 개의 관을 삽입한 채 24시간 기계를 달고 살 수 있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결과는 참혹하다 자연사는 안락사 내지는 살인과 혼동되기까지 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생의 마지막에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던 일은 이제 유기로까지 비난받게 되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수액이라도 맞다가 죽어야 정상인 것처럼 오인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환자의 죽음은 어떤 경우든 일어나면 안 되는 의료 실패, 의료 사고가 되어버렸다 의사들이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는 일을 점점 더 어렵고 기피하게 만든다 죽음을 늘 곁에서 보는 완화의료 종사자나 요양사들은 입을 모아 집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집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지만 그런 행운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 대다수의 경우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집에 임종할 만한 공간이 없거나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안되면, 요양병원이 아닌 요양원을 선택해야 한다 불행히도 요양원에 자리가 없어 요양병원을 선택하게 되면 이곳이 나의 마지막 임종 장소라는 것을 의료진에게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급 종합병원으로 이송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다보면 연명치료에 들어갈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결과는 결국 기계에게 위탁하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암에 관해 저자가 들려주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름대로 암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쉽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CT 촬영의 피폭량은 자연 상태에서 노출되는 피폭량을 고려할 때, 짧게는 3년, 조영제를 쓰는 경우 7년 동안 맞을 양을 한번에 맞는 것과 같다 암환자가 흔히 찍는 양전자방출 컴퓨터 단층 촬영은 8년 치를 한번에 맞는 수준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검사하다가 암에 걸릴 가능성은 잘 모르고, 조기 암 진단을 받을 수 있게 정밀 촬영을 해달라고 한다 과도한 암 검사가 오히려 득이 아니라 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암검사는 일반적으로 높은 이윤이 보장된다 많은 병원들은 의사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에 연동해서 보직이나 승진을 결정하는 일이 흔하다 암을 조기 발견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명제처럼 되어버려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현대 의료는 암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의미 없는 진단, 수술로 이어지는 과잉 진료를 낳기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암을 예방해야 하는 병, 조기에 발견해서 완치해야 하는 병, 첨단 기술로 정복해야 하는 병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바로 암도 치매, 관절염 등과 같은 노환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모든 암은 65~69세 사이에 발병률이 정점을 보인다 전체 암의 50%가 70세 이상의 고령에서 발생한다 평균연령 74 3세의 암환자들이 사망 당일 복용한 약제의 수는 대략 11종이었다 효과가 없거나 유독할 수 있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병으로 1개월 후 사망할 환자에게 심혈관 예방약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배경에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다 제약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고가 장비에 투자했으니 이윤을 뽑아야 한다 저자는 80세 이상의 고령 환자가 대부분 점령하고 있는 중환자실을 젊은 혹은 어린 환자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고 주장합니다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돌보는 곳이 아니라 노인들의 삶을 마감하는 장소로 전환되고 있는 중환자실의 현황을 저자는 두고 볼 수 없었나 봅니다 저자가 중환자실에 관해 내리는 정의는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중환자실은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이것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키고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한된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박탈함과 동시에 의료비용의 천문학적인 증가를 가져온다 의료인으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병원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까운 가족과의 접촉조차 금지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승압제를 올리면 말초혈관이 오므라들고 혈액순환이 나빠지면서 손가락 발가락이 썩어들어간다 살 가망이 없는 환자를 얼마 동안 돌아가시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강제로 공기를 불어넣는 인공호흡기는 환자에게 편하지 않다 의식이 있는 경우 인공호흡기의 압력은 몹시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강력한 진정제를 투여해 환자를 의식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자발 호흡을 죽인 상태에서 시행된다 대부분의 인공호흡기 장착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환자실에는 항생제에 저항성이 높은 극강의 병원균이 우글거린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감염이 중환자실의 가장 큰 문제다 그 다음이 섬망이다 무사히 살아서 중환자실을 나오는 환자의 40~80펴센트는 인지장애를 겪는다 책에는, 병원에 의탁하지 않는, 임종 사례에 대해서도 적고 있습니다 암에 걸린 것을 알자 현대의학 치료를 거부하고, 미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났다가, 1년 만에 돌아가신 백발의 91세 할머니 일주일간 곡기를 끊으시고,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누워서 돌아가신 팔순 할머니 3주간 집안 정리를 한 후, 먹던 약을 모두 중단하고 조용히 자면서 숨을 거둔 87세 체리할머니 그리고, 병원에서 밤새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급식줄을 뽑고 돌아가신 어느 할머니 그 할머니들의 인간적인 죽음을 꼭 가슴에 새겨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