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에 가까스로 기회를 잡은 KFC의 할랜드 샌더스

65세에 가까스로 기회를 잡은 KFC의 할랜드 샌더스

켄터키프라이드 치킨의 창업주로 유명한 할랜드 샌더스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으로 15세 이후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5년간이나 농장 일꾼, 자동차 페인트 공, 전차 차장, 농부, 연락선 조종사, 보험외판원, 철도 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박봉의 월급으로 살았다 그러나 시간 당 16센트를 받고 철도에 못을 박거나, 석탄차에서 짐을 내리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샌더스는 성실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었다 굳은 신념을 가지고 시간이 갈수록 그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지만 성공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샌더스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어릴 때부터 소질이 있었던 요리의 재능을 혼자서 계속 발전시켰는데, 그 재능을 돈벌이에 이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요리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39세가 되던 1929년, 켄터키 주의 코빈에 작은 주유소를 개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다 여행 중인 세일즈맨이 차에 기름을 넣으면서 주변에 번듯한 식당 하나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들었을 때 샌더스는 정말 주위에 맛있는 식당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 한 마디에 자극을 받은 샌더스는 식당을 열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심지어 샌더스까지도 그 결심이 미국 패스트푸드 혁명의 씨앗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샌더스는 그의 전기 작가인 존 피어스에게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내가 정말로 잘 할 수 있는 것은 요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적어도 부근의 다른 식당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 샌더스는 그의 주유소 마당 뒤에 있던 조그만 창고를 개조해서 지나는 여행객이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식당을 개업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남부 스타일의 음식들을 팔았다 닭튀김, 직접 만든 햄, 야채샐러드, 집에서 만든 비스킷 등이었다 소박하지만 맛이 있는 그의 음식은 점차 소문이 나고 사람들은 점점 더 몰려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식당으로는 손님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 주유소 문을 닫고 ‘샌더스 카페’라는 이름의 정식 레스토랑을 차리게 되었다 그의 나의 42세 때였다 1930년대에 접어들자 샌더스 카페는 음식 비평가로 유명한 던컨 하인즈의 ‘맛집을 찾아서’라는 책에 소개가 될 만큼 유명해졌다 좌석 수도 142개로 늘려 대형 레스토랑이 되었으나 남부 지방의 가정집 같은 실내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했다 또 그 기간에 샌더스는 코넬 대학의 레스토랑과 호텔 경영 8주 과정을 이수하여 더욱 유능한 식당 경영자로 거듭났다 닭튀김은 샌더스의 주특기였다 그러나 프라이팬에 튀기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바닥이 깊이 파인 팬을 사용하면 샌더스의 기준에 맞지 않게 튀겨졌다 샌더스는 식당에서 대량으로 닭을 튀길 수 있고, 또 자기의 기준에 맞는 맛을 내려면 특수한 프라이팬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식당을 경영하는 틈틈이 수 년에 걸쳐 닭튀기는 도구를 개발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49세가 되던 1939년, 마침내 샌더스는 압력튀김기라고 이름붙인 발명품을 만들었다 이제 더 맛있는 닭요리를 더 신속하게 조리할 수 있게 되었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닭을 튀길 수 있었고, 촉촉하고, 양념의 맛을 간직한 채 닭 요리를 할 수 있었다 그 압력튀김기로 닭을 튀기면 기름기가 남거나 겉이 딱딱하게 굳지 않았다 그러나 샌더스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닭 요리를 더 맛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았다 그는 각종 허브와 양념을 닭튀김에 완벽하게 배합할 수 있을 때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1940년 50세가 되었을 때, 성공한 레스토랑 경영자로서 주변에 명성이 자자했지만 그는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이루려던 것을 아직 이루지 못 했다고 털어놓았다 후에 켄터키프라이드 치킨의 소유주가 되는 그의 친구 존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샌더스는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꿈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우러러볼 만한 큰 사람이 되길 원했던 겁니다 ” 샌더스는 비록 그 지역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스스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 했다고 느꼈다 시간이 자기를 피해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1949년 59세의 식당 경영자가 된 그는 켄터키 주 정부로부터 커널이라는명예 직위의 직함을 수여받았다 그것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사업가 할랜드 샌더스에게 이제 커널 할랜드 샌더스가 되었다 그는 외모까지도 새로 가꾸었다 길고 굽실거리는 흰 머리카락, 흰 염소수염과 코밑 수염, 흰 양복, 흰 셔츠, 검은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 검은 구두, 그는 그 자신을 커널이라고 부르고 이름에도 커널이라는 사인을 했다 사람들은 샌더스가 남다른 명예욕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보인 진짜 이유는 그것이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53년이 되었을 때 샌더스는 가게를 16만 4천 달러에 매각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좋은 조건이었지만 팔지 않았다 국도 25호와 새 길 75호의 인터체인지가 그의 가게 앞에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3년 후, 예상과는 달리 국도 25호가 그의 가게와는 상관없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게 되었다 졸지에 샌더스의 식당은 하루에 차 한대도 지나지 않는 외진 구석에 자리 잡은 꼴이 되어 버렸다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쇠락해가는 식당을 살리려고 무리를 한 끝에 수중에 돈 한 푼 남지 않게 되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가게를 7만 5천 달러에 팔았는데 그것은 그 동안 쌓인 빚을 겨우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 커널 샌더스는 이제 은퇴해서 연금으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이미 65세의 노인이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받은 연금 수령액은 105달러였다 그와 아내가 겨우 살아갈 돈이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다시 한번 어려움에 빠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샌더스는 좌절하지 않았다 존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커널의 훌륭한 점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샌더스가 처음으로 연금을 받았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앉아 자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부터 내가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그건 닭튀김이야 그게 바로 내가 앞으로 할 일이지 ” 그 일 년 전에 샌더스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유타 주에 있는 레스토랑 한 곳에 그의 닭튀김 양념을 팔았는데,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돌자 다른 몇몇 레스토랑의 주인들이 그 양념으로 맛을 낸 닭 한 마리당 4센트의 돈을 지불하기로 샌더스와 계약한 일이 있었다 샌더스는 다른 식당 주인들도 그런 계약에 흥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 있는 식당들과 그런 계약을 맺는 것도 가능하고, 바로 그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확신했다 샌더스는 그의 흰 캐딜락 차 드렁크에 몇 개의 압력솥과 그가 만든 비밀의 향신료와 양념 묶음을 싣고 길을 떠났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와, 오래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관절염에도 불구하고 샌더스는 성공을 위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가자고, 나아갈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해내야만 했습니다 ” 그는 차를 몰고 식당들을 찾아 다니며 식당 주인이나 지배인에게 자신만의 닭튀김 조리법을 설명했다 만일 그 식당 주인들이 호감을 표시하면 그는 그 식당에 며칠간 머무르며 주방에서 닭튀김을 요리해 주었다 그리고 손님들이 샌더스가 요리한 닭을 좋아하면 그는 닭 한 마리에 4센트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샌더스의 전기 작가인 존 피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샌더스는 열다섯 살 이후 근 50년 동안 판매와 관련된 일을 했는데, 그때 낯선 식당들을 찾아다니면서 진실로 판매할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자기에게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자기 제품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있었지만 길을 떠난 첫 한 달간은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에 빠지는 격심한 고통과 싸워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 그는 켄터키프라이드 치킨의 맛을 인정해주는 식당 주인들을 찾기 위해 점점 더 중서부의 황량한 길로 들어섰다 때로 그는 모텔비를 아끼기 위해 차 뒷좌석에 웅크리고 자기도 했다 낮에 홍보용으로 만든 프라이드 치킨을 저녁식사로 때우는 날도 많았다 간이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면도를 했고, 거울을 보면서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격려의 말을 하곤 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돌아다닌 첫 2년 동안 샌더스는 겨우 다섯 군데의 프랜차이즈를 모집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식당 주인에게 그의 닭요리가 별로라고 말하면 그것은 곧 그를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계약을 맺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샌더스는 포기하지 않고 전국을 횡단하며 영업을 계속했고, 샌더스의 조리법으로 닭튀김을 만든 식당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점점 많은 식당들이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었다 1960년이 되자 미국과 캐나다에 2백여 개가 넘는 켄터키프라이드 치킨의 체인점이 생기게 되었다 샌더스의 나이 70세였다 그제서야 그는 여행을 그만두고 프랜차이즈의 채널 운영자(성필원)는 무계획적인 사상가를 뜻하는 'kabbu'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스스로를 학문과 성공의 지혜를 결합시킨 최초의 세속 철학자로 칭한다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다른 의미있는 삶의 철학을 추구하면서 그 결과물을 글과 강연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양처럼 살 것인가 늑대처럼 살 것인가』와『생존』, 『정보브로커』,『인간농장』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내 안의 백만장자』와 『행동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직접 번역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20만명 ‘힘이되는 좋은글’ 같은 다양한 사이트들도 운영중이다 #좋은글 #앎 #인문학 #역사 #좋은생각 #자기계발 #오디오북 #힐링 #명언 #아이디어 #처세 #문학 #심리학 #건강 #발차기 #운동 #예술 #철학 #인생수업 #비즈니스 #성공학 #인간경영 #자기개발 #위인전 #인간농장 #짧고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