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81회 15살 신라 백제 가야인은 나라를 구했다
“온조왕 41년(기원후 23년) 한수 동북쪽의 여러 부락 사람으로 나이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위례성(慰禮城)을 수리했다 ”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등장하는 기사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은 아마도 15살을 노동력의 기준 나이로 여겼음이 틀림없다 후대의 임금들은 바로 이 온조왕의 유훈을 이어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경우엔 한술 더 뜬다 신라의 화랑도 조직을 보자 〈화랑세기〉에는 “13~14살이 되면 낭도가 될 수 있었다”고 기록됐다 이 가운데 15살에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가 된 사다함은 걸출한 화랑이었다 사람들이 풍채가 미끈하고 뜻과 기개가 곧은 그를 화랑으로 받들었다 1000명이 그의 밑에 들었다 561년 진흥왕(재위 540~576)이 가야를 정벌하려 하자 사다함은 출전하겠다고 나섰다 임금이 ‘너무 나이가 어리다’고 불허했지만, 사다함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다 결국 예하 장수가 되어 출전한 사다함은 기습작전의 선봉을 자처했다 사다함의 전공으로 가야는 마침내 멸망했다 진흥왕이 가야 정복의 1등공신이 된 사다함에게 가야 노예 300명과 전지(田地)를 하사했다 하지만 사다함은 가야 노예들을 모두 풀어주고 논밭과 토지도 사양했다 왕이 “그래도 받아야 한다”고 강권하자 사다함은 조건을 달면서 받았다 “그러시다면 알천(閼川·경주시 북천)의 땅만 주옵소서 ” 사다함은 진흥왕의 명령을 끝내 어기지 못했지만, 그 조차도 쓸모 없는 땅을 ‘콕 찝어’ 받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15살에 있었다 (〈삼국사기〉 ‘열전·사다함전’)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경향신문 홈페이지 경향신문 페이스북 경향신문 트위터 스포츠경향 홈페이지 스포츠경향 페이스북 스포츠경향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