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장환 엘리야 사제)2023년 2월 19일 연중 7주일 감사성찬례 [성공회대학로교회]

(설교: 김장환 엘리야 사제)2023년 2월 19일 연중 7주일 감사성찬례 [성공회대학로교회]

2023년 2월 19일 연중 7주일 감사성찬례 [성공회대학로교회] 1독서: 레위 19:1-2, 9-18 2독서: 1고린 3:10-11, 16-23 시편: 119편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5:38-48 성서이야기: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나? by 김장환 엘리야 사제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십계명을 주신 것처럼, 예수님도 산에 오르시어 팔복을 핵심으로 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를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산상수훈 중에 있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전해준 하느님의 말씀을 ‘모세오경’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동안 왜곡되어 배워온 모세오경에 나오는 말씀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가르쳐 주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마태 5:38)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등 모세오경에 나오는 ‘동해복수법’입니다.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께서 보복을 허락하셨다고 잘못 이해하고 다양한 보복 근거를 법제화하여 보복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들어온 유다인들은 복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당한 것 이상으로 복수하지 못하게 하는 ‘보복제한법’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으로 ‘앙갚음하지 말라’고, 복수심을 다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며 속옷을 달라면 겉옷을 주고 달라는 사람에게 주라고 가르치십니다. 자기권리포기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고 들어왔다’(마태 5:43)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교에서 오늘 1독서 레위기 19장 18절,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말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웃을 사랑하라 했지 원수를 사랑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원수를 미워해도 된다’고 잘못 해석하고 가르쳐 온 것입니다. 특히 에세네파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원래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라’(마태 5:48)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독서의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는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자기권리포기, 원수사랑이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닮는 길이며 거룩함입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바로 이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 자기권리포기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받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사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서신은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1고린 3:23). ‘그리스도의 것’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되어 성령님이 그 안에 오시어 사는 존귀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내 신분이 변화되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었다는 확신이 예수님처럼 권리를 포기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누가 원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나요? 십자가의 은혜로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 바로 여러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