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2일 그분의교회 주일 설교. "하나님의 보화 (3)" (출애굽기 19:1-6)

2025년 1월 12일 그분의교회 주일 설교. "하나님의 보화 (3)" (출애굽기 19: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잘 다스리시기 위해 그들 위에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두셨듯이, 또한 온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시기 위해 이 땅 위의 모든 민족들 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이 기계적 또는 문자적으로 제사장 직분을 사용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자신의 직분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잘 드러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아서 온 세상의 민족들 앞에 하나님의 통치가 어떠한 것인지를 드러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이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는 것이 선행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투영시켜 세상도 그 법을 따라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온 세상 민족들을 위해 부름 받은 보물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적 의미도 바로 이 관점 안에서 이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는데 이러한 법들이 출애굽기 20장부터 31장까지 소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6절과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제사장 나라라는 독특한 역할을 주시고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20장부터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섬김의 원리를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출애굽기 3장 12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라고 주신 말씀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벡성 전체에게 이루셨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출애굽기 3장의 사건과 출애굽기 19장의 사건은 시작과 결과로서의 매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6절 후반부에 나오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거룩한 백성라는 표현은 방금 6절에서 말씀드린 제사장 나라와 병행되는 구절로써 제사장 나라의 성격 내지는 특징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은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이 말은 앞에서 설명 드린 제사장 나라가 어떠한 상태의 나라임을 알려주는 표현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리를 잘 반영해서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그들은 자신들 속에 거룩함이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함은 그들이 제사장 나라라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전제가 됩니다. 두 번째로 이 말은 제사장 나라가 혈통에 제한된 이스라엘 민족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결국은 온 세상이 다 제사장적 나라가 될 것이라는 궁극의 성취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400여년 전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을 통해 “혈통과 민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루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 출애굽기 19장에서 제사장 나라라는 언급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출애굽기 19장의 제사장 나라라는 말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창세기 12장 1부터 3절까지의 약속의 관점에서 이 출애굽기의 제사장 나라라는 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백성을 가리키는 단어는 두 가지로 나뉘어 쓰입니다. 그것은 암(מ󰘞)과 고이(יוֹג)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각각 그 쓰이는 용례가 틀립니다. 암(מ󰘞)이라는 말은 혈통적 백성이라는 말을 의미하여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그러나 고이(יוֹג)라는 단어는 백성이라는 의미를 갖고는 있으나 혈통적인 의미를 갖는 그런 백성이 아니라 통치적인 의미에서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라면 그들은 어느 민족이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방 민족일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그들도 이 고이(יוֹ󰔸)에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의 거룩한 백성에서 사용된 단어는 혈통적 의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단어인 암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백성을 알려주는 의미의 단어인 고이인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9장 6절에 사용된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에서 백성에 해당하는 “고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12장 2절에 사용된 “고이”와 같은 단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아브라함을 통해 세우실 나라에 대해 말씀 하실 때에 창세기 12장 2절에도 혈통을 초월하는 나라를 가리키는 “고이”가 사용되었고, 출애굽기 19장 6절에도 역시 동일하게 혈통을 초월하는 의미로 “고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백성이란 결코 이스라엘 민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은 장차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여 거룩하게 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 말은 방금 앞에서 말씀드린 제사장 나라가 결국에는 온 세상을 향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고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세상 전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고이라는 단어를 이 출애굽기 19장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하시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아 그들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전체에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 출애굽기 19장을 이해함에 있어서 반드시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약속을 통해 이 본문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문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게 되면 그 결과, 세상의 모든 민족들도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세상 모든 민족들도 과거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나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갖게 될 보물로서의 의미와 역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발전은 이미 본문에서 어느 정도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6절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신학적인 달성을 암시해주는 표현이 됩니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로 본문이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신약을 통해 보다 분명히 검증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 이 적용이 타당한지를 검토하기 위해 한 사도의 증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절반만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 말은 일차적으로는, 당시 베드로가 교회들에게 그들이 받고 있던 고난과 관련하여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러한 표현은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출애굽기 19장 5절, 6절과 아주 유사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연결은 그가 구약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올바로 적용했다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말하려고 한 것은 결국 베드로가 말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역시 그의 백성들을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옛날 구약시대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를 하나님의 제사장 곧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갖으신 목적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역시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아서 그 다스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영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9절 뒷부분에서 그 목적,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보물로 삼으로 목적에 대해 이렇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아서 하나님의 모습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 앞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의 옛 목적들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신약시대 에도 존재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은 특별히 신약시대에 있어서 그분의 교회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이젠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히 알고 그 목적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제가 제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신자들께서 정하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보물로서 어찌 살아가야 할지를 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더불어 말씀드린다면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알려 준 바와 같이 위에서 소개한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은, 각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교회라는 공동체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만 하나님께 잘 순종하고 잘 살면 되지”라는 종교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그리고 이 땅의 교회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앞에 잘 살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걱정하고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중단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