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22.11.20 나없는 나(디모데전서 4:12-16)

오전22.11.20 나없는 나(디모데전서 4:12-16)

나 없는 나 2022년 11월 20일 본문 말씀: 디모데전서 4:12-16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신앙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 속에 주님의 예언이 들어왔느냐 여부로 정해집니다 예언이란 인간이 손수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만 친히 이루어나가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애쓸 일이라면 굳이 예언이 들어오실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언이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어떻게 알까요? 신앙이 여부는 놀랍게도 불신의 세계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불신의 세계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신앙인을 놀리고 모독합니다 “너 아직도 예수믿어?” 그러면 예언이 들어있지 않는 상태에서 교회나 다니는 사람 같으면, “내가 언제 예수 믿었다고 그래 그저 예수에 대해서 알아보겠다는 것이지 나는 여전히 나를 믿어! 최종적으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바보 안되려고 사투를 벌립니다 주변에 있는 자들과 비숫하게 가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은 불신의 세계에서 가려지는 신앙인 여부입니다 이 세상은 개인을 공략하는 식으로 움직입니다 “새 냉장고 들여놓으시지요?, 새 안마기는 어때요?”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종교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구원 안 받았으면 구원받아 두세요 개인적으로 유리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예언은 인간들이 달라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호두껍질 안에 호두가 들어있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껍질 깨트렸는데 안에 아무 것도 없는 경우도 있어 썩은 것도 나옵니다 예언이 절대적으로 신앙이 만들어내는 이유는, 인간은 모든 것을 잃어야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일입니다 그 일이 성도에게 박히면 성도도 동일한 길을 반복해서 보이게 됩니다 요한복음 12:24-25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는 불신자가 신자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둘째 아들은 그가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본인의 이름을 인해 의기당당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생각은 없고 온통 자신의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세상에 나가 돈을 다 잃고 난 뒤에는 더는 자기 이름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독립성을 유발했던 그 존재의 바닥 장판은 사정없이 뜯겨나갔던 겁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가치를 인정하면서 그 아버지의 집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도 좋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지킬 마음이 없게 된 겁니다 이처럼 신앙인은 자기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교환된 겁니다 요셉이 처음 꿈을 꿀 때는, 그것이 형들 앞에서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요셉이 꿈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꿈 자체를 위해 요셉을 쓰여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를 위하여 처리되느냐로 구분됩니다 갈라디아서 3:10에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모든 인간들은 ‘율법의 집’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모든 방에는 율법이 작용합니다 마치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이 파티장처럼 말입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가락 하나가 나타난 허락도 없도 벽에서 글을 씁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단 5:25) 뜻은 이러합니다 “끝났다 끝났다 무게 달아보니 당신은 끝났다 그 다음 나라는 바사나라다”입니다 즉 인간 세계에서는 인간들로부터 초대받지 않는 말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신자냐 불신자냐 구분됩니다 불신자는 자신의 의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경우에는 변명과 조작과 사기로 일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에게 친히 마음을 바꾸면서 기존의 목숨과 육신까지 악마에게 돌려주게 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인은 벌거벗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 벌거벗음이 있어야 덧입음이 성립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 즉 주님은 성도로 하여금 자신이 죄를 들추어내어 보여줍니다 더는 자신을 의롭게 만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구원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도행전 10:12-14에 보면,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와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자체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려합니다 그 대신 베드로 안에서 작용되고 있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경건치 않는 자를 위하여 피 흘리심’입니다 (롬 5:8-9)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이란 기존의 아담을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는 곳은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셔서 아담의 형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상에 근거를 둔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나게 하심입니다 이는 곧 성도가 더는 자신을 위한 인생이 아니게 하십니다 우리를 위하신 분은 우리가 아닙니다 따로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꾸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우리 육신이 뿜어내는 여전한 자기 잘남의 집착을 ‘독한 암세포 덩어리’로 취급해서 끄집어 보이시는 방식으로 주님은 자신의 은혜를 나타내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본능에 우리가 눈 감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