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창조주가 아니다! 신이 탄생하는 과정  최초공개!

신은 창조주가 아니다! 신이 탄생하는 과정 최초공개!

#신 #종교 #우주 #4차원 #깨달음 인간은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랐지만 여전히 나약하며 위태롭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복했다는 자연은 생태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넘어 시공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늘 피조물의 한계를 절감하며 그것을 뛰어넘을 방법을 모색해 왔습니다 그리고 찾아낸 결론은 바로 神이었습니다 완전무결한 존재인 神이 구원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 유일신 종교입니다 ​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神이 구원을 해준다는 보장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가령 현대사회를 일러 신용사회라고 합니다 신용이 토대가 되어야 금전거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업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神 역시 신용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神이 정말로 구원을 해 줄 의향이나 능력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첫 번째 神의 족보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인지, 아니면 힘깨나 쓰는 天神이나 山神의 부류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람이나 홀리면서 사는 일개 잡신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 만일 첫 번째 창조주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원인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선 안 됩니다 하지만 여태껏 창조주의 自存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점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神이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해 동양철학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상에서는 단예 선사가 풀이한 동양철학적 神의 화생론(化生論)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가령 어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도화지부터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도화지는 만물의 바탕을 빗댄 것으로, 이것을 불교에서는 空, 道家에서는 谷이라 각각 칭합니다 도화지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창출될 수 없겠지요 그런데 기이하게도 도화지에 어느 순간 물과 물감이 생겨납니다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다루겠지만, 간단히 말해 도화지와 물과 물감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아무튼 물은 없애려는 힘으로 無力이고, 물감은 있게 하려는 힘으로 有力입니다 도화지 위에 無力의 물과 有力의 물감이 뒤엉키게 되니 순전히 카오스 상태입니다 이 두 힘만 있다면 영원히 추상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의 힘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도화지 자체가 지니고 있는 어떤 힘입니다 도화지는 모든 그림을 담으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것을 일러 용력(容力)이라 합니다 이 容力이 無力과 有力에 배어들면서 카오스 상태에 조금씩 질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容力은 붓에 빗댈 수 있습니다 ​ 容力은 계속해서 뭔가를 담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無力과 有力이 원운동을 하며 하나의 유기체로 이어지게 됩니다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구조가 원(圓)인 까닭이지요 無力과 有力은 더 많이 담기 위해 균형을 이루며 원운동을 지속하니 어떤 뚜렷한 성질을 띤 것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넓게 펼쳐지면서 4차원 상계(象界)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容力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담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운들은 계속해서 농축하고 더 이상 4차원에서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때 궁극에 이르러 4차원의 한 지점이 폐쇄되어 응축됩니다 4차원에 대한 반발력이 생겨나는데, 이렇게 저항 값을 받아 폐쇄된 곳을 총칭하여 3차원이라 합니다 그리고 폐쇄되어 뭉쳐진 기운들을 일컬어 물질이라 하고요 ​ 이렇게 3차원 물질세계가 고통스럽게 펼쳐지지만 容力은 여기서도 계속해서 작용합니다 더 많은 것을 담기 위해 원운동을 통해 질서를 만듭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담으려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容力은 디지털化 된 물질, 다시 말해 생명체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생명체는 더 많은 것을 담기 위해 뇌의 용량을 계속해서 늘려나갑니다 DNA를 만들어 자신이 담은 것을 후대로 전해주면서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담게 하고, 드디어 인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 그런데 인간들 가운데 모든 것을 다 담아서 더 이상 담을 것이 없는 사람이 한 명 나옵니다 그가 바로 싯다르타입니다 태초부터 시작된 容力의 담는 활동이 자신에 이르러 끝났다는 경이로운 선언입니다 모든 것을 다 담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全知이고 깨달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왜 어쭙잖은 체험들로 깨달을 수 없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 아무튼 우리는 간략하게나마 容力의 정보 대장정을 마무리한 싯다르타까지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容力이 무엇일까요? 이 容力을 동양철학에서는 神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無力을 氣, 有力을 精이라 각각 부릅니다 담으려는 힘인 神과 흩어지려는 힘인 氣, 그리고 묶어 놓으려는 힘인 精, 이 세 가지 힘이 가위바위보 식으로 얽혀서 돌아가는 것이 우주변화의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격을 지닌 神’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