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최강의 무사 척준경 [국뽕주의]
안녕하십니까? 다들 무탈하십니까 ? 이왕형입니다 이왕형이 보기에 이세상은, small thing, big thing, nothing, 세상사 새옹지마입니다 각자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잘 견디시기 바라며, 이왕형도 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삶의 무게를 이겨 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척 준경으로 찾아뵙니다 척준경 정확한 출생년도는 미상이며 1144년까지 살다간 대한민국 역사상 최강의 무장, 미야모토 무사시도 나뒤쇼 할만한 그 남자의 의 이야기 전설의 집행검 마스터 척준경, 마치 무협 소설의 주인공 같지만, 실화였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입니다 지난 시간에 미야모토 무사시를 언급했는데, 만약 만의하나 척준경과 미야모토 무사시가 동시대에 살아서 결투를 벌였다면, 이황의 생각은 제 아무리 미야모토 무사시라 해도 척준경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척준경의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척준경은 고려시대의 무사로서 곡산척씨의 시조입니다 당시 척준경의 집안 형편은 좋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 집안은 아니었나 봅니다 청년기는 매우 남자답고 주위에 친구가 많았다고 하며, 소위 힘 좀 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단연 탑이 었다고 합니다 척준경은 딱히 제갈공명 같은 전술가도 조조 같은 정치인은 아니지만, 검술과 힘으로서는 그와 필적할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선 명현만 선수보면 강력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정도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아님 더 강력했을까요? 척중경의 전투력은 정말 무자비해서, 오로지 파이팅 실력 하나로 여진족을 정벌하면서 십수만의 고려군 장병을 구해내고, 여진족의 대한민국 침투를 막아내어 역사를 바꾸었고 일국의 최고 실권자까지 오른 어마 무시한 트루 워리어입니다 여기서 여진족에 대한 네이버 사전을 살펴보면 여진-족 역사 10세기 이후 만주 동북쪽에 살던 퉁구스계의 민족 수렵과 목축을 주로 하였는데, 한나라 때에는 읍루, 후위 때에는 물길,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는 말갈이라 하였다 발해가 망한 후에 거란족의 요나라에 속하였다가 아골타가 1115년에 금나라를 세웠으며, 17세기에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웠는데, 뒤에 청나라로 발전하여 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을 통일한 한마디로 타노스급의, 역대 최강이라 할만한 강력한 민족입니다 여진족들의 체격은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몽고 거란족들보다 여진 말갈족은 말보다 돼지를 많이 키워 먹었기 때문에 체격이 보다 좋았으며 중국을 계속 지배하려면 힘뿐만 아니라 문화적 수단이 필요 했지만, 그런 효과적인 수단이 없었던 여진족은 중국문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장기적으로는 결국 여진사회는 중국문화에 흡수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고려인은 자유로운 정신성을 바탕으로, 문화적으로는 개방적이었고, 보편성을 지닌 세계적인 인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한 반면에 민족과 문화에 대한 자아 의식이 강하고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인의 정체성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정치 군사적으로 다른 민족들을 힘으로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고려인들의 정체성과 포용력 있는 문화 생태, 자유를 끝없이 희구하는 정신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유스러운 고려 시대 유물을 통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려가 계승한 고구려의 벽화인 수렵도와 무용도를 통해서, 그들이 용감하고 기상이 넘치며, 패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고구려의 굳센 기상을 가지고 있으며, 키도 크고 채식보다는 주로 육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고려인들이 이러한 특징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백제와 신라처럼 기후가 따뜻하고 땅이 비옥한 지역이 안이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끊임없는 정복 야욕을 막지 못하면 국가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려인들은 예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예를 잘 익혀야만 했으며, 체격 또한 커야 했습니다 그들은 특히 활을 잘 쏘며, 말을 잘 타고 사냥을 잘 했습니다 또한 문화적으로 우수하였으며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손님이 오면 성심성의껏 접대할 줄 아는 예의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금나라의 태조인 완안 아골타의 형 완안 오아속이 이끄는 여진족 군단은 척준경 한 사람의 무력에 의해 번번히 좌절되었다고 합니다 척준경때문에 수세에 몰린 여진족은 최강의 전사를 소환했으며 그의 이름은 사묘아리입니다 이미 17세 때 혼자서 일개 부족을 격파했던 사묘아리는 단 하루에 세 번의 전투에서 고려군을 격파하였고 고려의 해군 기지까지 점령했다고 합니다 사묘아리가 여진족의 운명을 구원하던 그 날, 공교롭게도 척준경은 전투 현장에 없었다고 합니다 척준경과 사묘아리는 상대가 없는 현장에서 각각 전투실력으로 영웅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승부로 끝난 전쟁을 통해 고려와 여진은 서로에게 진저리가 났습니다 이렇게 포기를 모르고 정신력을 발휘하는 전투 민족과는 다시는 붙고 싶지 않았던 여진족은, 이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는 고려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훗날 금나라의 황제는 국경의 여진족 장수들에게 고려에 먼저 싸움을 걸면 이겨도 죄를 묻겠다는 조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척준경'은 단순히 어떤 단어나 글로 표현하기에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럼 그는 어떤 업적을 이루어 냈을까요? 제1차 여진 정벌 때, 척준경은 품계도 없는 하급관리인 '별가'라는 직책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총사령관 '임간'에게 요구해서 받은 말 한필과 무기로, 상처 하나 없이 아군 포로 두 명을 구해내고 적장 한 명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퇴각하는 길에도 적장 두 명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말로만 들으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이었습니다 여진족은 기마민족이기 때문에 고려가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장’의 목을 베었고, 아군 두 명도 구해내었는데도, 무사했다고 합니다 제 2차 여진 정벌 때도 그는 성안에서 나오지 않는 여진족을 물리치기 위해서 엄청난 무자비한 무력을 발휘했습니다 '척준경'은 공성전 중에, 단신으로 성벽 위로 올라가 여진족장을 서너 명 죽였다고 합니다 성벽을 오르는 것 자체도 많은 체력이 필요한데, 성벽을 오르고도 적장을 죽인 것입니다 공성전에서의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지, 선빵을 때리기 위해 단신으로 돌격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인지를 생각해보면, 이것을 해낸 그는 정말로 무신 일 것입니다 이후에도 여진족에게 기습을 받아 포위되었을 때도, 왼손에 방패, 오른손에 칼을 들고 병사 10명을 이끌고 달려가서 다치지 않고 여진족 병사 들을 해치우며 지원군이 올 시간을 벌었다고 합니다 여진군에게 고려군이 패배하는 와중에도 척준경의 군대만은 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황이 바라본 척준경은 사실상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무예를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주는 무장입니다 이건 정녕 아닌 것 같지만 실화인 척준경에 대한 기록은 야사에 나와있는 기록이 아닌 모두 정사의 기록입니다 이황이 생각하는 척준경은 비단 고려뿐만 아니라 당시 동북 아시아 역사상 장 뛰어난 무인이며, 약자에게 강한것이 아닌 진정한 강함이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용기있고 장대한 대한민국 역사 속의 한 남자 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영상이 좋으셨다면 구독과 엄지척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뽕주의 [내용 및 영상출처] TVN도깨비,MBC주몽,KBS역사채널,네이버버사전, 고려와 여진 전쟁 주인공 척준경 #공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강한 인물 #척준경 여러분의 도움없이 영상만들기가 무쟈개 어려운데요 시청후 좋아요와 구독 꼭 부탁드려요~ It's very difficult to make a video without your supports Please thumbs-up and subscribe after watching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