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끔직한 호러 동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사고에 도전하는 사람들. 폐소공포증으로 사망한다는 위험한 동굴 탐험의 비극.
02:32 끔찍한 끼임사고 (실화1) 07:07 가장 잔인한 동굴의 비극 (실화2) 1840년 미국의 동굴탐험가 스테판 비숍이 최초로 동굴 지도를 만들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깊이 3km가 넘는 매머드 동굴 안에서 어떤 위험을 만날수 있을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동굴탐험이 본격화된 1900년대 이후, 모험심이 강한 많은 서양인들이 동굴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종류의 호러 상황을 만나며 죽어갔습니다 질식과 공황장애, 낙석과 추락으로 인한 골절, 고립으로 인한 아사, 동사… 등등의 고통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되며 실패한 동굴탐험가에게 끔찍한 공포와 고통스러운 종말을 안겨줍니다 구조기술이 발달된 현재에도, 동굴 구조는 매우 위헙하고 어렵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인간의 동굴 탐험 실패 대가는 가혹합니다 1920년대 미국의 켄터키 지역에서는 동굴 관광이 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수익성 높은 관광개발을 위해 동굴 탐험에 몰두했죠 1925년 38세의 동굴탐험가 플로이드 콜린스는 부동산 업자와 동굴개발 계약을 하고, 켄터키주의 샌드케이브라는 아름다운 동굴을 혼자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동굴탐험에 자신이 있던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등유랜턴 하나만을 들고 동굴 속에 들어갔는데요, 좁은 틈에 맞닥뜨린 그는 그곳을 지나기만 하면 또 다른 넓은 공간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 좁은 통로를 통과하려고 안감힘을 쓰는데요, 하지만 랜턴 연료가 부족해, 다음으로 기회를 넘겨야 했죠 그리고 되돌아 나오려고 순간, 그의 발이 바위에 미끄러지며 발목이 바위 틈 사이로 끼워집니다 그는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바위 틈으로 다리가 점점 더 밀려들어가게 되며, 결국 어색한 자세로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렷죠 다음날 형이 동굴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을 발견한 그의 동생들이 플로이드가 동굴 안에 갇혀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형제들이 형에게 다가가 대화를 하고, 물과 음식을 건네준 후, 구조를 시도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꽉끼인 몸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주변에 사례금까지 걸며 도움을 구했고, 이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금방 톱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십명의 소방 구조대가 그의 구출을 위해 투입됩니다 그가 갇힌 곳은 지표면에서 그렇게 깊지 않은 18m 깊이 금방이라도 구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방대 요원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구조를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데요, 그러자 그들은 플로이드게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동굴 통로의 암석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작업 중 발생한 진동으로 플로이드와 구조대 사이에 동굴 벽면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플로이드는 완전히 고립됩니다 이 절망적인 소식에 미국 전역에서 기자들이 모여들고, 샌드 동굴 주변에는 10,000 여명의 구경꾼들이 모여들며 장사진을 이루는데요, 이 때문에 동굴 밖에는 마치 축제가 벌어진 것처럼 북적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매춘부들까지 모여들었다고 하네요 국민적 관심으로 주 방위군까지 동원되어 구조작업을 펼쳤습니다 또 다른 붕괴를 막기 위해, 모든 작업은 직접 손과 삽으로 무너진 흙더미를 조심스럽게 파내며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작업 속도는 무척 더뎠죠 100여명의 구조대들 중엔 몸이 바짝 밀착될 정도로 좁은 동굴 속에서 무리한 작업을 하다가 부상을 입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래서 동굴 밖에 임시 군병원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그가 갇힌지 17일만에, 붕괴된 벽면을 모두 제거하고 플로이드를 발견했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의학자들은 그가 발견되기 24시간 전쯤에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판단했죠 플로이드를 꺼내기 위해서는 그의 몸을 분리해야 했기 때문에, 시신을 동굴안에 남겨두기로 합니다 무리하게 시신을 빼내다가 다른 구조대원들의 목숨까지 잃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켄터키의 샌드 동굴은 그 사건 이후로 봉인되어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훗날 그의 시신을 빼내어 장례를 치뤘다고 하죠 이 사건은 동굴 탐험의 위험성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린 첫번째 사건이었습니다 미국 유타주에 있는 열수 동굴 (마그마에 의해 가열된 물이 뿜어져 올라오는 동굴) 너티퍼티 1960년에 처음 발견된 이 동굴은 좁고 빽빽하며 구불구불한 통로가 430m 이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힘들게나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여러갈래의 터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미국에서 연간 5천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비틀린 크롤링을 통과하다가 갇힌 동굴 탐험가들과 보이스카우트들이 4차례나 구조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사고가 예견된 위험한 동굴이기도 했죠 미국 동굴탐험가들에게 인기가 있던 동굴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통로가 매끄럽고 미끌거렸는데요, 많은 방문객들이 안전장비도 없이, 밤늦게 몰래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주 정부에서 안전을 위해, 2006년 일시 폐쇄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2009년 5월, 안전장치 설치 후에 2009년 5월 다시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그해 11월 버지니아대 의대 2학년생인 존 에드워드 존스(남편이자 2살 아이 아빠)는 그의 형제와 지인 10명과 함께 너티퍼티 동굴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입굴하고 한시간 정도 지난 후, 동굴의 중간부 지점에 다달한 그는, 터널 옆에 난 좁은 구멍을 다른 통로로 착각해 진입했다가, 가로 25cm 세로 46cm 공간에 끼이며, 몸이 뒤집어진 채로 갇히게 됩니다 존스의 몸은 갈구리 모양으로 구부러져 고정되어 있었기에 사람이 물리적으로 그를 빼내기란 불가능햇습니다 동굴이 너무 비좁아서 다른 구조 장비를 이용하기도 어려운 상태였죠 투입된 구조대원들이 도르래를 이용해 그의 몸을 빼내는 듯 싶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로프가 끊어져 실패합니다 이것으로 키 180cm, 몸무게 90kg인 그의 몸은 오히려 더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그는 구조대원들에게 "내가 너무 뚱뚱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거꾸로 뒤집혀, 압축된 자세에서 몇시간동안 몸에 가해지는 긴장으로 인해 호흡곤란을 겪다가, 결국 28시간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구조대는 그의 시신을 회수하기가 매우 위험하다는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가족과 협의 후에, 그의 시신을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기로 합니다 그 후, 주 정부는 그가 갇힌 너티퍼티 동굴의 입구를 콘크리트로 채운 후, 영구 폐쇄합니다 그리고 동굴 입구에는 그의 묘비 명판을 새겨두었죠 그의 시신은 지금까지도 그 장소에 그대로 있습니다 미국의 한 동굴탐험협회는 이 폐쇄 조치를 극렬히 반대했었다고 하는데요, 2018년, 동굴 앞, 존스의 묘비가 이들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비좁은 동굴에 갇혀, 오랜 시간을 견디다가 처참하게 사망하는 사고는 동굴탐험 비극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으로 만들어낸 동굴 탐험의 비극은 이 뿐만 아닙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동굴탐험 사고중 가장 흔하게 발생한다는 침수사고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 Kevin MacLeod의 Inexorable 출처: 아티스트: ----------------------------------------------------------------------------------------------------- Kevin MacLeod의 Intermission - Tenebrous Brothers Carnival 출처: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