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뉴스 특별기획, 3.1운동 100년 - 항일운동과 기독애국인물 – 강시영, 김상준 목사(CTS, CTS뉴스, 기독교방송, 기독뉴스, 기독교뉴스, 교계뉴스)
앵커: 3 1운동 100년, CTS뉴스 특별기획 시간입니다 한국교회는 100년전 3 1운동 당시의 기독인들의 애국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해나가고자 기독애국인물들의 항일운동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은 성결교단의 신앙의 선배들이죠? 성결교단 최초의 목회자 중 한 명인 김상준 목사와 친척 강시영 목사의 나라사랑 이야기입니다 박세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성결교회의 기원인 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한 평안도 용강 출신 김상준 목사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을 위한 성서학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11년 김목사는 동경서 함께 수학한 정빈 목사와 경성 성서학원을 설립합니다 이후 1914년 4월 21일 전국 교역자 수양대회(제5차 성결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본격적인 목회에 나서게 된 김 목사 순회 사역으로 곳곳을 돌며 부흥회를 열어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같은 시기 김상준 목사의 외가 친척이었던 강시영 목사는 김 목사의 전도를 받아 목회자가 된 후 1918년 경남 밀양에 교회를 개척합니다 김상준 목사는 사역을 이어가던 중 평안도 고향 사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평안도 용강은 당시 상해임시정부로 가는 배가 오가는 진남포항과 가까운 지역 고향 사람들이 독립운동의 강한 의지를 전해들고 찾아 온 겁니다 INT 박명수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김상준 목사는 1919년 3 1운동 발발 후 고향인 평안남도 용강군 출신 사람들과 함께 강시영 목사가 목회하고 있는 밀양으로 향합니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함께 힘을 모아 나설 때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절박함을 담아섭니다 두 목사는 동료들과 밀양을 거점 삼아 일본 경찰을 피해 방 안에 볏섬을 둘러 쌓고 촛불을 켜놓은 채 지역의 3 1운동 모의를 진행합니다 결국 이 움직임은 밀양 3 1운동으로 이어졌고 김 목사와 강 목사는 주모자로 체포돼 평양 형무소에 수감, 가혹한 고문을 받게 됩니다 이후 항상 형사들의 미행에 시달리고 가족들도 어려움을 겪으며 평생 편히 살 수 없었던 두 목사 안락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조국의 독립을 향한 집념이 두 사람을 이끌어가는 힘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INT 박명수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안전한 목회현장을 뒤로 한 채 목숨을 걸고 독립을 향해 뛰어들었던 두 목사 그들의 목회 현장은 강단이 아닌 독립운동의 한복판이었습니다 CTS뉴스 박세현입니다